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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67 호

2016.04.08

너와 나의 서울 랜드마크

너와 나의 서울 랜드마크(시계방향으로 네장의 사진이 있다 - 1)어느 건물 앞에서 모델을 찍는 여러명의 사진작가 2)한옥 돌담길을 걷는 한사람의 뒷모습 3)멀리 보이는 63빌딩과 주변 빌딩 전경 4)한옥 여러채가 있는 건물 내부)

‘세월 참 빠르다’는 어른들의 말은 거짓말 같았다. 이제, 거짓말 같던 여섯 글자는 나의 말이 되었다. 물질의 의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면 서울의 수많은 랜드마크들도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다. 명성과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아도 특별한 추억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추억’이라는 이름의 위안을 주는 곳,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지만 언제고 으뜸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운명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간, 나의 과거와 현재의 서울을 밝히는 랜드마크들에 대한 이야기다.

 

글, 사진 문유선(여행작가)

 

 

고요한 궁의 옛 수식, 나들이의 성지

 

명정문(창경궁 조정 출입문)앞 품계석이 세워져 있는 마당이 있다

 

서울의 궁에 동물이 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잣대로 생각하면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창경궁의 당시 이름은 창경원.

서울에서 코끼리, 사자, 기린 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원이자,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이면 도시락을 싸 들고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창경원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서울 시내 최고의 유원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생애 최초의 나들이 풍경도 창경원이었다. 처음 보는 동물들의 움직임이 마냥 신기했고, 키가 작아서 회전 비행기를 못 탄다는 어른들의 말에 서러움이 폭발했고, 다음번엔 기필코 비행기를 타게 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모노레일을 타며 아쉬움을 달랬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해 겨울, 창경원은 제자리를 찾았다. 이름도 되찾았다. 일제 잔재 청산, 민족정기 회복과 같은 거창한 주제와 별개로 사람들은 아름다운 궁을 남용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동물들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대대적인 이사를 했고, 일본이 심었던 벚나무가 있던 자리에 소나무를 심었고, 일본이 혜경궁 홍씨가 머물던 자경전을 허물고 올린 박물관도 허물었다.

74년 오욕의 세월을 버텨낸 창경궁은 어린 시절, 나들이의 추억이 담긴 랜드마크에서 평생 설레는 마음으로 찾게 될 아름다운 정취의 궁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더 정확히는 되찾아가는 중이다. 세종이 짓고, 성종이 확장 공사하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광해군이 복원한 데 이어 일제강점기 훼손된 궁의 면면을 아직까지 복원하는 중이다.

 

 

창경궁 안 한옥 여러채

창경궁 안 나무 숲길

 

 

궁이 생겨난 이래 수많은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조선시대 가장 슬픈 역사로 남은 사도세자의 비극, 임오화변이 일어난 곳도 창경궁이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어간 곳은 문정전 앞마당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사도세자가 태어난 집복헌에서 아들 순조가 태어나도록 했으며, 집복헌 곁에 붙은 서행각인 영춘헌에서 책을 보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이곳에서 승하했다. 집복헌 옆 대비전인 통명전은 장희빈이 사약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궁 자체의 역사도, 궁에서 일어난 역사도 파란만장하지만, 2016년 봄의 창경궁은 평화롭기만 하다.

 

 

창경궁 안 호수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원앙새 여러마리

 

창경궁이 좋은 이유는 수없이 많다. 홍화문에서 금천이 흐르는 옥천교를 건너는 순간, 명정문 사이로 겹쳐 보이는 명정전을 향해 걸을 때 느끼는 시각적 자극(평면인 듯 보이다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결정적 순간의 아우라가 있다), 이른 아침 사방에서 울리는 새소리와 낮게 걸린 빛이 만들어내는 전각과 나무의 그림자들, 일제의 잔재라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식물원의 온기, 식물원 문 입구에 조각된 오얏꽃 문양, 멋지게 뻗어난 백송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아직, 창경궁에는 동물이 산다. 산비둘기와 참새들이 날고, 날렵한 청설모는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타기 바쁘다. 춘당지의 원앙들도 꼭 만나볼 것. 요물이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는 고요한 물살에 유유자적 몸을 맡기다가 출사객들이 하나둘씩 모여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를 던지면 이쪽저쪽으로 밀당하듯 열심히 움직인다.

 

TIP 창경궁 홈페이지(cgg.cha.go.kr)는 개장 시간, 입장료, 가이드 투어와 관련한 기본 정보를 비롯, 창경궁의 역사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다. 궁은 아는 만큼 재미가 배가 되니,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진화하는 전망대

자랑이 신명 나던 유년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최고의 랜드마크는 단연 63빌딩 전망대. 학급 친구들 중 63빌딩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아이는 그날 하루만큼은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 63층을 1분 만에 올라갈 수 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맛있는 밥을 먹었다, 아이맥스 영화를 보고 거기에 더해 바로 앞 한강에서 오리배도 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한마디로 올킬. 친구의 묘사로 배열된 일정들은 SF 영화의 줄거리처럼 들렸다.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 친구들, 사회 친구들이 추억하는 첫 서울 상경의 목적지 역시 대부분 63빌딩이었다.

 

63빌딩과 주변 건물 외관 전경

양화대교 남단 전경(한강이 보이는 다리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사람)

 

 

다음 세대에게, 이 영웅담 같은 경험치의 무대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가 될 것이다. 올해로 63아트전망대는 ‘서울 시내 초고층 전망대’라는 타이틀을 내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63빌딩 전망대는 아련한 추억으로 가득한 ‘나의 마천루’다. 어린 시절, 큰마음 먹고 올라야 했던 전망대는 어느새 친근해졌다.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이 개관한 이후로 전시가 교체될 때마다 올라가게 된다. 강 건너 남산이 마주 보이는 전망을 배경으로 알차게 기획한, 위대한 작가들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치명적 매력을 도무지 뿌리칠 재간이 없다.

 

 

너는 세계 패션의 랜드마크가 되어라

해외 출장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종종 한국에서 가장 특이한 게 무엇인지 묻는 경우가 있다. 언제나 주저 없이 동대문 새벽시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서울에선 말이지, 새벽 두 시에 옷을 살 수 있지. 그것도 명절을 제외한 일 년 내내.”라고 답하면 질문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동공을 확장하고 언빌리버블을 외치며 외계인을 마주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DDP 외부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

 

요즘 동대문을 가보면 서울의 랜드마크 이상의 이름값을 한다. 아시아 쇼핑의 메카로 거듭난 지는 이미 오래고,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이라크의 건축 거장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들어서면서 패션과 디자인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유연한 곡선의 은빛 구조물은 마치 동대문에 착륙한 우주선을 보는 듯하다.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어울림광장, 동대문역사공원으로 구성된 모든 공간에는 알찬 콘텐츠들이 꽉꽉 들어찼다. 알림터에서는 패션과 디자인을 주제로 열리는 다양한 전시, 행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배움터는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연결된 유선형의 조형계단, 산책하듯 오르내릴 수 있는 나선형 경사로의 디자인 둘레길, 간송 미술관의 소장품을 만날 수 있는 디자인박물관, 매회 굵직한 전시로 주목받는 디자인 전시관이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디자인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현재, 서울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DDP 내 살림터에 마련된 디자인 용품 숍, 진열된 상품을 보는 외국인

디자이너의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종이 아래로 디자인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살림터도 즐길 거리 풍족하긴 마찬가지. 어린이 놀이터인 아이플레이, 아이와 어른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디자인 놀이터,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숍, 만 삼천여 권의 디자인 서적이 비치된 디자인 도서관을 비롯해 세미나실과 카페가 자리한 디자인 나눔관 등을 둘러보려면 하루가 바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패션위크가 DDP에서 열리면서 공간과 콘텐츠 모두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취재 당일, 동대문 DDP는 한국에서 옷 잘 입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기라도 한 듯 초현실적인 분위기였다. 패션 관계자, 모델, 연예인 등이 드문드문 얼굴을 드러냈고, 어울림 광장은 행사를 즐기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등장한 대중들과 그들을 찍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동대문이 쇼핑의 메카, 서울 디자인의 랜드마크를 넘어 세계 패션의 랜드마크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DDP건물 밖 밀레오레 건물이 보이는 길에 모델이 서 있고 그녀를 찍는 여러 명의 사진작가가 있다

 

 

언젠가, 너도 변화하겠지만

1998년, 남자친구가 복무하던 군부대가 거기에 있었다. 고무신인 나는 오다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자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교통이 불편했고, 라면과 즉석 떡볶이, 백반을 파는 집이 드문드문 있어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인근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트선재센터 안의 카페가 전부였다. 도서관 앞 슈퍼 2층에 촌스러운 분위기의 찻집이 있었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한두 시간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졌다. 겨울이면 눈밭 위로 눈발이 내려앉는 소리가 소복소복 들릴 정도로 조용했던 곳, 이 동네의 이름은 많다. 재동, 계동, 안국동, 소격동, 삼청동, 가회동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주거 지역, 북촌이다.

 

북촌 한옥마을 길

 

그 시절 북촌의 정취를 마음 한편에 온전히 간직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동네는 다시 찾을 때마다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카페가 한둘, 갤러리가 더 많이, 번듯한 밥집들이 생겨나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매체에 자주 소개되면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어졌고, 원래 있던 아기자기한 가게 대신 화려하고 거대한 대형 체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격동, 가회동, 재동, 계동의 변화는 조금 더뎠지만, 안국동과 삼청동이 변화하는 속도는 감당이 안 됐다. 조곤조곤 말하던 수줍음 많던 친구가 화장을 짙게 하고 걸걸해진 목소리로 말을 거는 듯한 괴리감에 조금 슬펐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촌을 애정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리운 동네 정서. 작은 한옥 마당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따뜻함과 거리의 고즈넉한 기억. 그 기억이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간다. 서촌이 그랬고, 그다음 순번은 익선동이다. 오랫동안 상권이 형성된 지역이라 조용하진 않지만, 옛집들이 이어진 아담한 세 개의 골목을 따라 밥집, 카페, 게스트 하우스 등이 생겨나고 있다. 하나의 골목엔 철물점이 있고, 다른 하나의 골목엔 장미 넝쿨 집이 있다. 철물점 골목엔 카페, 레스토랑 등이 생겨나고 장미 넝쿨 집 골목엔 게스트 하우스 두 개와 사진관, 그리고 빈티지 숍이 문을 열었다.

 

 

익선동 옛집들이 이어진 사이길

골목길, 철물점 맞은편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읽는 철물점 주인아저씨

 

그리고 이 두 골목과 수직으로 만나는 또 하나의 골목엔 최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카페 ‘식물’이 자리 잡았다. 아직까지는 가정집, 철물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한 골목을 공유하고 있는 풍경에 마음이 놓인다. 철물점 아저씨는 골목 어귀 간이 의자에 앉아 신문과 찬송가를 번갈아가며 열심히 보고 계셨다.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가 짙게 나는 것 같았다. 골목을 돌아 만난 장미 넝쿨 집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5월에 장미가 엄청 많이 펴.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때 다시 와. 카메라 든 사람들로 버글버글 하다니까! 호호호호!”

맑게 웃는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그곳에 사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쭉 일상의 삶과 상권이 공존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으로, 변화의 속도가 조금 더뎠으면 좋겠다.

 

익선동 카페 식물, 특이한 모양의 흙벽과 큰 선인장화분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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