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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76 호

2017.01.04

남해에서 새해 첫 다짐

남해에서 새해 첫 다짐

새로운 다짐을 새기는 1월. 의미 있는 목표를 정하고 싶어 남해로 떠났다. 남해의 겨울은 봄날 같았고, 세 가지 다짐이 마음속에 움텄다.

글, 사진 박은경

변하지 않아도 괜찮아

남해는 봄이다. 이따금 매서운 섬 바람이 엄습하지만 사계절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봄 같은 섬이다. 새해를 보름 앞두고 찾은 남해도 싱그러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땅 위로 머리를 풀어헤친 시금치와 주렁주렁 매달린 유자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마치 겨울에서 봄을 향해 달려온 기분이었다. 단단히 둘렀던 목도리를 풀고 봄 소풍 가듯 가볍게 길을 나섰다.

남해의 푸릇푸릇한 겨울 풍경

새해를 보름 앞두고 찾은 남해의 겨울은 싱그럽고 푸른 기운으로 가득했다

시장 좌판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홍시, 귤, 유자, 대파 등을 팔고 있다)

이맘때 남해전통시장은 유자 향기로 아찔하다

남해 미조항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한 남해 바다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 덕분에 보물섬이라는 애칭을 지녔다. 특히 올망졸망 섬이 흩뿌려진 해안 경관이 빼어나다. 그중에서도 층층이 쌓인 논과 그 너머 어우러진 바다 풍경으로 소문이 났다. 이름도 유명한 다랭이마을이다.

가파른 땅에 마을이 들어선 건 400년 전이다. 지주들의 착취를 피해 도망 온 가난한 이주민들이 땅을 일구고 논둑을 쌓고 흙으로 틈을 메워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이렇듯 고단한 삶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다랭이논은 이제 어엿한 명소가 됐다.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논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남해 다랭이논

남해 다랭이논.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 논이 뚝뚝 깎여 떨어지고 그 끝에 푸른 남해가 펼쳐진다

다랭이논을 보려면 마을 위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다 아래까지 내려가야 한다. 논과 집 사이 할머니 등처럼 굽은 길을 따라 걸으면 다랭이논의 온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걷는 동안 바다도 만나고 소박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도 만난다. 어떤 구간은 경사가 유난히 가팔라 다리가 뻐근할 정도다. 마을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민박이 제법 들어 섰다. 방치되고 버려진 다랭이논도 눈에 띈다. 고된 농사 대신 음식점이나 민박으로 생업을 변경한 게 하나의 이유가 됐다. 막을 수 없는 변화라고는 하지만 옛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지금의 마을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다랭이마을 구경에 나선 사람들

다랭이마을 구경에 나선 사람들

다랭이논만큼 남해의 특별함이 담긴 명물을 꼽자면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에 V자형 울타리를 치고 물고기가 들길 기다렸다가 걷어 올리는 전통 어업법이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일명 귀족 멸치로 통한다. 그물에서 털어내는 과정이 필요치 않아 비늘과 육질이 상할 우려가 적고, 가공시설이 위치한 포구와 가까워 선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빨간 등대와 남해 죽방렴이 보이는 바다풍경

남해 죽방렴

바다 위에 세워진 나무로 만들어진 그물, 죽방렴

죽방렴을 구경하러 창선교로 향했다. 다리 아래로 빠르게 흐르는 지족해협은 약 440m의 폭을 지니는데, 그 물살과 터가 멸치잡이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창선교 위에 서면 죽방렴의 자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속도와 변화를 맹신하는 세상에서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원시 어업을 만난다는 건 꽤 반갑고 설레는 일이었다.

꿈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남해는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저 남해대교에서 10분쯤 달리면 이락사(李落祠)에 닿는다. 공식 명칭은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다.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 전경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 돌비석

이순신 장군이 꽃처럼 숨진 이락사. 공식 명칭은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다

대성운해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는 이락사 경내

이락사 경내 묘비각에 걸린 ‘대성운해(大星隕海, 큰 별이 바다에 지다)’라는 현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락사는 ‘충무공이 떨어진 곳에 세운 사당’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노량해전 전사 후 충무공의 주검이 맨 처음 뭍으로 올려진 땅이다. 당시엔 그저 해안가였고 숲이었으나 충무공 사후 234년이 지나 유허비와 비각이 세워졌고 이락사라 이름 붙었다. 이락사 뒤편 소나무 숲에는 첨망대가 자리했다. 가파르지 않은 숲 길을 500m가량 걷다 보면 2층 팔작지붕 누각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충무공이 숨을 거둔 그 바다를 볼 수 있다. 전망대가 아니라 첨망대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첨(瞻)’은 단순히 쳐다본다는 뜻을 넘어 ‘우러러본다’는 의미다.

첨망대 정면 외관

이순신 장군이 숨을 거둔 바다를 볼 수 있게 조성된 첨망대

첨망대에서 내려다본 관음포 일대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관음포 일대

누각에 서서 충무공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관음포를 오랜 시간 내려다봤다. 아니 마음을 다해 깊이 우러러봤다. 그는 ‘전투가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는 유언으로 마지막까지 임무를 다했다. 자신의 길을 미련할 정도로 묵묵히 걸고 부끄럽지 않은 최후를 맞았다. 바다를 등지고 되돌아 나오는 길, 우직한 해송 숲이 든든하게 느껴져 마음이 놓였다.

이락사에서 나와 충렬사로 향했다. 남해대교 아래 노량마을 언덕에 세워진 충렬사는 관음포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으로 지금도 가묘가 남아 있다. 그의 유해는 이후 고금도를 거쳐 고향인 아산 현충사로 운구됐다.

충렬사 아래 돌계단을 오르는 어린이

충무공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사당 내부

충무공의 시신을 잠시 모셨던 남해 충렬사

남해 충렬사는 통영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그 때문에 외려 아늑하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꼭 충무공의 성정을 닮았다. 사당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왼쪽은 충민공비고, 오른쪽은 충무공비다. 충민공은 이순신이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기 이전의 비명으로 남해현령 이정건이 세웠다.

사당 뒤엔 충무공의 가묘가 있다. 원래는 봉분이 없었으나 1970년대 충무공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봉분을 높게 쌓았다고 한다. 가묘를 엄호하듯 둘러쳐진 담장 너머로 남해의 바닷바람이 넘나든다. 충무공의 전부였을 바다의 울림이 아득하고 깊다.

남해 충렬사 이순신 가묘

충렬사 사당 뒤에 놓인 충무공 가묘

남해 충렬사 충민공비

충민공비. 이순신이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기 이전의 비명이다

행복하자, 우리

남해에서 심기일전하기 적당한 장소를 꼽는다면 보리암을 놓칠 수 없다.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으로 손꼽힌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에 앞서 백일기도를 올린 곳으로도 알려졌다.

새벽 일찍 금산에 올라 바라본 보리암

새벽 일찍 금산에 올라 바라본 보리암

사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은 그 자체로도 매우 잘생겼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품속에 자리한 유일한 산악 지역으로 남해가 품은 바다를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금산은 남해의 열두 가지 빼어난 풍경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연말이나 연초에는 해돋이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굳이 소원성취가 아니어도 이곳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금산 형리암

보리암 뒤쪽의 절하는 모양을 한 바위 형리암

이태조 기단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이태조 기단

조용히 일출을 보고 싶어 새벽부터 서둘렀다. 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을 올라 제2주차장에 이르렀다. 매표소 지나 오르막을 따라 15분쯤 더 걸어 오르면 보리암이다. 제2주차장이 만차인 경우에는 제1주차장에서 유료 셔틀버스를 타고 제2주차장까지 오르면 편하다.

보리암은 오르고 또 올라온 노고만큼 멋진 풍경을 내어준다. 해가 뜨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아스라이 지운 해무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듬성듬성 솟은 섬과 망망대해가 경쟁하듯 얼굴을 내밀고, 고요한 듯 강렬하게 차오르는 남해 바다의 힘이 마음을 뒤흔든다.

보리암과 남해의 일출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화엄봉이 적당하다. 보리암 뒤쪽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랐을 뿐인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산 한가운데 자리한 사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당히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온통 금빛으로 물드는 남해의 바다를 만끽했다. 아래 암자에서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남해 보리암 일출

보리암에 서면 다도해 섬 사이를 아스라이 헤집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품을 수 있다

보리암으로 내려가는 길, 내친김에 쌍홍문까지 가보기로 했다. 보리암 아래로 10분쯤 걸어 도착한 쌍홍문은 금산의 관문이다.

말 그대로 무지개 모양의 문이 두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얼핏 보면 거인의 콧구멍 같기도 하고, 해골의 눈 같기도 하다. 굴은 속이 비어있고 천장 구멍이 뚫려 있어 하늘이 잡힐 듯하다.

두개의 문이 있는 쌍홍문

쌍홍문의 한쪽 문 안에서 바라본 풍경

금산의 관문 쌍홍문

보리암으로 돌아와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한 사람당 하나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두 손을 모은 다음 눈을 감았다. 한 번 말하고 나면 절대 물릴 수 없다는 생각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늘 행복하자’고 운을 뗐다. 해수관음상은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변과 어우러진 해수관음상 정면 풍경

해수관음상 앞에서 기도하는 한 사람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알려진 보리암 해수관음상

보리암 동전 바위에 동전을 붙이고 있는 사람

보리암의 오래된 바위에는 동전이 떨어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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