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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79 호

2017.04.04

돌담길 안팎

돌담길 안팎 Deoksugung Place 

 

걷는다. 움직인다. 깨어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책에 대한 소회는 한결같다. 의식이 환기되고 거듭나는 아름다운 순환. 이십 년 전, 처음으로 느낀 아름답고 강렬한 순환의 배경은 덕수궁 돌담길이었다.

글, 사진 문유선(여행작가)

 

 

길을 기억해

 

이문세가 별밤지기였던 시절 정동길을 동경했다. 철부지 초등학생은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또래 친구들에게 젠체했다. 조숙해 보이고 싶은 허세가 가득했나 보다. 가늠하기 어려운 서정을 노래하면서 꿈꿨다. 언젠가는 낙엽이 가득한 덕수궁 돌담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답게 이별해야지. 한 계절, 떠난 사랑을 그리워해야지. 노랫말처럼 정동교회 지붕 위로 눈이 덮이면 예배당에 앉아 떠난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지.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난다.

 

돌담앞 벤치에 앉아 이야기 하는 연인 

돌담은 기억하겠지. 수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다짐은 8년을 묵었다. 재수가 결정된 초봄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혼자 강을 건너는 버스를 탔다. 어깨가 쳐졌고 발걸음은 질질 끌렸다. 자기 연민이 가득한 정서에 어울릴만 한 풍경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택했다. 초행길을 더듬는 통에 센티멘털한 감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펼쳐 든 지도가 바람에 펄럭이다 찢어졌다. 현실은 꿈꾸던 것과 달랐다. 이별할 사람은 없었다. 짝사랑의 서글픈 마음을 돌담 아래 묻고 스스로를 위해 기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담길은 아름다웠다. 정갈한 모양새로 굽이치는 돌담 건너편엔 유럽 같은 풍경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동양과 서양, 조선과 근대의 정취가 담을 경계로 묘하게 어우러졌다. 풍경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울한 재수생은 활기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날 돌담길은 내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 ‘산책의 기쁨’을 가르쳤다.

 

돌담 앞 나무판자 위에 연탄탑, 연탄안에 꽃이 한두송이 꽂혀있고 트리형태로 쌓아놓은 연탄재 

 

강산이 두 번 변했다. 심란하거나, 몸이 무기력해질 때면 여전히 돌담길을 찾는다. 기분에 따라 담장 안 덕수궁으로 들어가거나, 담장 밖 정동길을 따라 목적 없이 걷는다. 궁궐과 정동길의 역사 속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나의 산책길은 풍요로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풍성해졌다. 이따금씩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운치 있다.

 

 

돌담 안, 궁궐 이야기

 

덕수궁은 작정하고 지은 궁이 아니다. 원래는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과 그 자손들이 살던 집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전쟁 중 도성의 모든 궁궐은 불에 탔다. 적이 태운 궁보다 도성을 버린 왕을 향한 성난 민심이 불태운 궁이 더 많았단다. 피난에서 돌아와 갈 곳 잃은 선조는 이곳에서 기거하다가 승하했다.

궁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왕위를 계승한 광해군 때부터다. 이름을 경운궁(慶運宮)이라 짓고 전각들을 올렸다. 이후 창덕궁으로 돌아간 광해군은 경운궁 석어당에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했다. 이는 서인들이 주도한 인조반정의 계기가 됐다. 반정을 성공한 인조는 광해군을 그가 계모를 유폐했던 석어당에 가둬 문책했고 보란 듯이 바로 옆 즉조당에서 즉위했다.

 

기와집 뒤편 산책로를 걷는 연인 

석어당과 즉조당 뒤편에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이후 궁은 200년간 주인 떠난 빈자리를 쓸쓸하게 지켰다. 궁이 맞이한 새로운 주인은 아관파천 후 돌아온 고종이었다.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했다. 혼란한 정세 속에서 치열한 자리매김을 하려는 의지다. 결기는 궁의 전각들을 새로 세우고 다듬는 것으로 드러냈다. 아쉽게도 역사는 고종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본의 압력에 굴복한 고종은 순종에게 양위하고 태황제라는 허울뿐인 직위를 받고 물러앉았다. 순종은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빈다’는 의미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렸다. 경운궁은 주인의 이름을 따라 덕수궁이 됐다. 고종이 승하한 후 덕수궁은 해체됐다. 지금보다 3배가량 컸던 궁의 일부가 세종대로로, 시청으로, 광장으로, 미국 대사관저로 나뉘었다.

 

함녕전 뒤편 계단길을 오르는 연인 

함녕전 뒤편으로 빌딩 숲이 보인다. 돌담 안팎으로 펼쳐진 풍경의 결이 다르다

 

 

덕수궁은 아담해졌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많아 둘러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고종이 세운 중화전의 천장은 찬란하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지막 투지가 서려 더러는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금빛 용 두 마리를 둘러싼 단청의 아름다움에 취해 목덜미가 아플 때까지 하염없이 올려다보게 된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정관헌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게 되는 곳이다.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라는 뜻에 맞게 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고종이 이곳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고, 해방 이후에는 카페로 영업하기도 했단다.

 

중앙에 두마리의 용이 꿈틀되는 듯한 디테일이 아름다운 중화전의 천장 

디테일이 아름다운 중화전의 천장,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정관헌의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정관헌의 천장, 샹들리에가 아름답다

 

분수앞 석조전 외관 전경 

분수와 하늘 사이의 석조전

 

 

 

석조전은 1910년 황제의 거처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유럽의 작은 궁 못지않은 풍모다. 옛 모습을 복원하고 2014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해 황실의 생활상을 가늠하게 했다. 1938년 세워진 석조전의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됐다. 굵직한 전시가 끊임없이 열려 연중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더없이 따뜻한 이 봄, 돌담 안 덕수궁에서 멍해져 보길.

 

 

돌담 밖, 정동길 이야기

 

덕수궁 대한문 옆 돌담을 따라 걷는 길. 여기서부터 새문안로까지가 ‘광화문연가’에 등장하는 덕수궁 돌담길, 다른 이름은 정동길이다. 연인이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이별하게 된다는 낭설은 옛말이 됐다. 이토록 아름답고,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는 길을 연인과 걷지 않으면 누구와 걷는단 말인가. 정동길은 햇살 가득한 날,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각각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사계절 내내 운치 가득한 길은 연인은 물론, 점심시간 짬을 내 산책을 즐기는 회사원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으로 언제나 붐빈다.

 

정동길에 설치된 이환권 작가의 작품을 감상중인 두여인 

정동길에 설치된 이환권 작가의 작품 ‘장독대’

 

 

정동은 오래된 이름이다.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정릉이 있어서 정동이라 불렸다. 조선 말, 개항기에 접어들면서 마포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서구 열강들의 공사관, 선교사들이 세운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한국 최초의 감리교 예배당인 정동교회와 영국성공회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 등이 들어서면서 개항기 조선의 대표적인 양인촌이 됐다. 손탁호텔과 공사관들을 제외하고 위에 언급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고스란히 남았다. 산책 중 서구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마주치는 순간엔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하다.

 

정동극장과 정동교회 앞 길을 오가는 사람들 

정동길의 상징인 정동극장과 정동교회

 

 

정동길은 대한제국의 가슴 아프고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을미사변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이 이 길 위에서 일어났다. 아관파천의 배경이 된 구 러시아 공사관은 정동공원 근처에 망루만 남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은 한때는 덕수궁의 전각이었으나, 지금은 미국 대사관저를 사이에 두고 외따로 떨어져 정동극장 뒤편에 우두커니 있다. 정동길 중앙에 위치한 정동교회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라는 것 외에도 의미가 크다. 대한제국 최초로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뒤에서 3·1운동 당시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던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인근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정동공원, 아이가 뛰논다. 바로 옆에는 러시아공사관저 터가 망루와 함께 남아 있다 

정동공원, 아이가 뛰논다. 바로 옆에는 러시아공사관저 터가 망루와 함께 남아 있다

 

 

정동길은 문화적으로도 알차다. 법무부 건물이었던 르네상스 양식의 근대 건축물은 서울 시립미술관이 됐다. 정동길 중앙엔 수준 높은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정동극장이 있다. 정동길 끝, 새문안로 건너편엔 서울 역사박물관도 자리해 두루두루 누리기에는 하루가 짧다.

간직하고 싶은 비밀 하나가 있다. 꼭꼭 숨겨두고 싶지만 정동길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니 밝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약 평일 정동길을 걷는다면, 예원학교를 끼고 정동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보자. 운이 좋다면 학생들이 연주하는 클래식 선율이 들릴 것이다. 담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실례는 금물. 바람과 햇살을 느끼며 가만히 들어볼 것. 장래 거장이 될 누군가의 연습시간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산책 중 느끼는 커다란 감동임에는 틀림없다.

 

카페 내부, 차와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 중인 사람들 

정동길 산책의 기쁨, 작고 아담한 카페에 들러 따뜻하거나 시원한 커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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