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2
서울숲 옆 맛있는 산책
초록 가득한 서울숲길을 산책하고 근처 골목으로 음식 탐험에 나섰다.
글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박은경
서울과 부산을 2시간 만에 주파하는 발 빠른 세상. 스피디한 현대인에겐 가끔 속도를 줄이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성현들은 집 주변에 걷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 놓고 산책하듯 걸으며 읽었던 책을 반추했다. 그리고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한낱 공염불에 그칠 수 있어서였다.
굳이 조상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걷기의 매력은 상당하다. 특히 육체적 운동의 관점에서 본 걷기의 힘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음직하다. 한 가지만 꼬집는다면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자신의 몸무게를 가지고 운동하면서도 관절이나 인대의 부상위험이 덜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별다른 장비도 필요 없다. 운동화 한 켤레면 그만이다. 자외선이 부담되면 챙이 달린 모자나 선글라스 정도 챙기면 된다. 눈비가 와도 걱정 없다. 오히려 눈과 비가 분위기를 북돋아 주기도 한다.
서울에는 마음 놓고 걸을 만한 장소가 제법 많다. 자연이 함께 하는 양재천변과 남산둘레길, 옛 정취 가득한 북촌 한옥마을길이 대표적이다. 또 서울 성곽길처럼 지자체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조성된 길도 있다. 그중에서도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곳 중 하나가 서울숲이다.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서울숲이 있다. 지금의 서울숲 자리는 예전에 피서를 떠나지 못하던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던 뚝섬유원지가 있던 곳이다. 2005년 문을 열고 10년 넘게 서울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했다. 면적이 무려 35만평에 달해 탁 트인 시원스러움이 특징이다. 문화예술공원, 자연생태숲, 습지생태원, 자연체험학습원, 한강수변공원 등 5개 테마로 구성됐다. 꽃사슴과 고라니가 뛰어놀고, 곤충 식물원, 환경 놀이터, 조류 관찰대 등 공원 내 여러 가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또 숲 해설, 힐링 강좌, 공방 프로그램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아이들의 체험 학습장으로 이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서울숲이 들어서면서 주변의 먹거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비소와 금속공장이 많은 성수동으로 범위가 넓혀져 서울숲역에서 뚝섬역, 성수역, 건대입구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래도 서울숲 먹거리의 핵심은 갤러리아포레와 뚝섬체육공원 사이에 있는 서울숲 2·4·6길이다. 워낙 공간이 좁아 이 거리를 다 둘러보는 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건축한 지 20년이 넘은 허름한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에 젊은 창업자들의 손이 가해지면서 레스토랑 또는 공방 형태의 미니 숍으로 변신 중이다.
햇살 좋은 날, 숲길을 찾아 사색을 즐기다 보면 금세 배꼽시계가 요란해진다. 산책에 나선 김에 인근 골목에 있는 맛집을 찾아보는 계획을 세워보자. 서울숲 주변 음식점 다섯 곳을 골라봤다.
서울숲 옆 맛집 5
대림창고
서울숲이 있는 성수동을 단박에 인더스트리얼 콘셉트의 핫 플레이스로 만든 주역이다. 서울숲에서는 살짝 떨어져 있다. 원래 정미소였는데 한동안은 물건 보관 창고로 활용되다가 비스트로와 커피, 예술작품이 어우러진 가게로 변신했다. 외관은 창고의 허름함이 남아 있지만 문을 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주말에는 음료 한 잔을 포함해 1만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으로 먹는 맛보단 눈으로 즐기는 맛이 더 풍성한 장소다. 갤러리의 전시작품도 단순하지 않다. 오전 11시 오픈. 봉골레파스타 1만7000원, 아메리카노 5000원.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 78 전화 02-499-9669
윤경양식당
상호가 무척 혼란스러운 곳이다. 70년대 경양식을 말하는 건지, 이름이 들어간 일반식당을 말하는 건지 아리송한데 그냥 읽는 사람 마음대로 읽어도 상관없는 음식점이다. 주인 이름 ‘신윤경’이 들어갔고, 메뉴는 경양식처럼 함박스테이크(1만1500원)와 돈가스(8500원)가 주종. 여기에 일반 한식당에서 파는 유자된장돼지구이(8500원)까지 들어 있으니 상호가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세 가지 메뉴 모두 테이크아웃이 가능해 서울숲으로 도시락 대신 챙겨서 움직여도 좋다. 함께 나오는 된장국이 진국이다. 계단 오르내릴 때 머리 조심.
주소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96 2층 전화 070-7630-3302
할머니의 레시피
낮은 담장의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 집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숨뼈국’이란 독특한 이름의 음식이 시그니처 메뉴다. 갈비 끝 뼈를 푹 곤 진한 육수에 고사리, 토란대와 소고기를 넣고 끓여낸 국인데 명절 때면 온 가족이 즐겨 먹던 내림 음식이란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아들 부부에게 전수한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소고기뭇국을 먹는 것처럼 차분한 맛이다. 가자미 생선구이를 곁들여 1만원을 받지만 아깝지 않은 값이다. 점심 특선은 8000원. 점심시간은 11시 30분부터, 저녁은 오후 5시 30분부터. 화요일 휴무.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6길 15-1 전화 02-467-5101
밀도
웬만한 두뇌로 읽기 힘들다. ‘meal°’라 쓰고 ‘밀도’라고 읽는다. 줄 서서 먹는 밥집은 많아도 줄 서서 먹는 빵집은 드문 일인데, 바로 밀도가 줄 서서 먹는 빵집이다. 빵집 앞 신호등 건널목은 신호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건너질 않는다. 빵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밀도에서는 그날그날 온도와 습도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매일 식빵을 구워낸다. 무지방 우유와 청정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담백하고 쫄깃한 담백식빵(4800원)이 대표 메뉴다. 큐브미니식빵 2000원. 오전 11시부터 판매. 월요일은 휴무.
주소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96 전화 02-497-5050
대성갈비
18년째 영업 중인 성수동 돼지갈비의 터줏대감. 이곳을 필두로 10여 개의 돼지갈빗집이 서울숲 먹거리의 관문 역할을 한다. 골목에 들어서면 달콤한 간장갈비소스 향이 지나는 이의 발목을 잡는다. 대성갈비는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에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이름을 적어 놓고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기본. 참숯을 쓰는 데다가 양이 푸짐하다. 재운 양념의 설탕과 간장 비율이 적당해서 단맛과 짠맛이 조화롭다. 주문 시 무료로 나오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별미다. 돼지갈비 1인분(200g) 1만3000원.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는 식사 준비로 문을 닫는다. 일요일은 휴무.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4길 27 전화 02-464-3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