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부 메뉴 바로가기
  • 정보공개

  • 국민참여

  • 사업

  • 알림

  • 공사

통합검색
국문 > 알림 > 청사초롱 > 최신호

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80 호

2017.05.02

아득한 강변길에서 마음을 유영하다

아득한 강변길에서 마음을 유영하다 

 

언제부터일까. 우리 땅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최고의 칭찬은 ‘외국 같다’는 말이 되고 말았다. 외국이야말로 모든 국내 여행지의 풍경이 지향하는 목표가 된 것일까. 대관령 양떼목장이나 거제의 외도가 ‘스테디셀러’ 여행지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외국 같은 풍경’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모두 ‘가짜’다. 양떼목장은 스위스 융프라우 아래 그린델발트를, 외도는 프랑스 베르사유 정원을 ‘모사’한다. 외국의 저택을 흉내 내 곳곳에 들어선 이국적 펜션들도 외국의 풍경을 베껴낸 것들이다.

 

이런 곳들은 눈부시게 화려할지언정 보는 이의 마음까지는 건드리지 못한다. 시각은 만족시킬 수 있지만 정서까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 풍경’은 유년시절의 과거와 아련한 추억을 건져 올린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이 깃들어 있지 않더라도, 그런 풍경 앞에 서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강변 근처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어도 신록의 미루나무가 늘어선 반짝이는 강 마을 앞에 서면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정서를 움직이는 이런 풍경에서는 대개 아름답다는 감상 대신 ‘뭉클한 마음’이 먼저 다가온다.

 

보성강의 물안개 

 

전남 곡성에는 보성강이 있다. 보성에서 발원해 곡성 땅을 휘감고 섬진강 물길에 몸을 합치는 강이다. 이 강이야말로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강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이다. 보성강은 짧지만 우리 강의 모습 그대로다. 구불구불 느리게 흘러가는 그 강에는 풀밭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는 소가 있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천렵을 하는 몇 무리의 아이들도 있다. 허름한 낚싯대를 드리운 채 초록 그늘 아래 낮잠이 든 촌로도 있고, 저물녘 강물에 삽을 씻는 농부도 있다. 하루하루 여름으로 다가서면 평화로운 이 강가는 순한 매미 소리로 가득 찬다.

 

매화꽃이 지고 난 매화나무에 자라난 매실 여러 개 

 

이런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곳이 곡성의 석곡면과 죽곡면을 지나는 18번 국도다. 그 길에서는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다. 강의 정겨운 풍경이 시선을 붙잡는 탓이다. 보성강의 강물은 느리다. 좀처럼 여울을 만들지 않는다. 마치 고여 있는 듯 건너편 산자락의 풍경을 고요하게 물그림자로 비춰낼 따름이다.

 

보성강변 초록의 들판을 걸어가는 남자

 

보성강을 찾아간다면 아득한 강변길을 오래 따라 들어가야 만나게 되는 고요한 절집인 동리산 태안사를 목적지로 삼는 것이 적당하지 싶다. 태안사 일주문은 절 입구에 있지만, 절집으로 향하는 마음속의 문은 강변길에서 이미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풍경 소리가 없어도 강을 따라가다 보면 벌써 산문을 들어선 듯 마음이 따스해지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태안사 일주문 입구가 보이는 돌계단길 

 

태안사는 신라 때 선(禪)을 가르치던 종파인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동이산파’를 이끌던 절집. 한때 송광사와 선암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지만 지금은 세속과 떨어져 적막 속에서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태안사로 드는 유순한 숲길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많다.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돌아가라는 ‘귀래교(歸來橋)’, 마음을 씻으라는 ‘정심교(淨心橋)’,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지혜를 얻으라는 ‘반야교(般若橋)’,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루는 ‘해탈교(解脫橋)’. 다리를 건널 때마다 다리의 이름을 되뇌며 내 안에 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다리가 ‘능파각(凌波閣)’이다. 미련도 욕심도 없이 가볍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를 ‘능파’라고 한단다.

 

태안사 능파각 전경, 초록의 숲 사이로 능파각이 있고 그 앞은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아 참, 태안사에 가거든 꼭 들어서야 할 문이 하나 있다. 누구든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인 ‘배알문’이다. 나를 낮추지 않으면 들어설 수 없는 문. 태안사에서 ‘선(禪)의 문’을 열었던 적인선사 혜철 스님의 부도로 가는 계단 끝에 그 문이 서 있다. 낮은 자리에 서서 고되고 천한 일을 내가 하는 그런 마음을 가르치는 문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문은 몇 해 전에 말끔하게 정돈돼 정취는 예전만 못하지만, 나를 낮추는 하심(下心)을 가르치는 뜻이야 달라졌을까.

 

태안사 배알문 

 

글, 사진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의견쓰기
0 / 1000 byte
등록
목록
  • 담당자 : 양숙희(홍보팀)
  • 전화 : 033-738-3054
  • 팩스 : 033-738-3881

관련콘텐츠

한국관광공사
26464 강원도 원주시 세계로 10 TEL : (033)738-3000 사업자등록번호 : 202-81-50707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9-서울중구-1234호
Copyright © KTO. ALL RIGHT RESERVED.
가족친화 우수기업3.0 공공문화정보 우수개방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접근성) 품질인증 마크, 웹와치(WebWatch) 2022.10.28 ~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