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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99 호

2019.01.22

산사에서 보낸 공백의 시간

산사에서 보낸 공백의 시간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시작된 새해. 문득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산사(山寺)로 향했다. 모든 소리가 숨을 죽이는 그곳에서 공백의 시간을 보냈다

글, 사진 박은경



느리게 흐르는 산사의 시간

새해 첫 주말 아침, 통도사로 향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어수선한 분위기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요즘 들어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 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대로 새해, 또 그다음 새해를 맞이하는 게 새삼 두려워졌다.


통도사는 경남 양산에 있는 사찰로 영축산 줄기에 자리했다. 매표소를 지나 몇 걸음 걸어 들어가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열렸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처럼 바람이 춤추고 소나무의 맑은 기상이 가득한 길이었다. 숲길 옆에는 살얼음 낀 계곡이 자작대며 흐르고, 경구(警句)가 새겨진 바위가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글귀 하나가 죽비처럼 뇌리를 내려쳤다.


통도사 무풍한송로



숲길을 지나 일주문을 건너 사천왕문 사이로 들어섰다. 통도사 전각과 영축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절 안은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바깥 세상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의 공기였다. 마당에 있는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경내를 천천히 둘러봤다. 소박한 탑과 석등을 기웃거리고, 색 바랜 외벽 벽화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대웅전이 보이는 전각 댓돌에 앉아 고즈넉한 산사 풍경을 즐겼다. 핸드폰도, 이어폰도 내려둔 공백의 시간이었다. 때로는 햇살이, 가끔은 바람이 기척 없이 다가와 곁에 앉았다. 평소보다 시간이 몇 배나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통도사 마당 풍경

돌로 만든 연꽃 식수대



사사로운 인연은 없다


사실 이번 여행만큼은 별다른 일정 없이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통도사는 쓱 둘러보고 지나치기엔 어쩐지 아쉬웠다. 어떤 사물의 역사를 엿본다는 것은 둘 사이에 연이 닿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렇게 돌아서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하루 더 머물면서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애초에 마음을 따르기로 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주문 옆 문화해설사의 집으로 향했다. 꾸밈없이 말간 얼굴의 해설사가 인사를 건넸다. “시간이 얼마나 있으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얼마든지요.”


통도사 전경

통도사 하노전


통도사는 큰 사찰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노전과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노전, 그리고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노전으로 크게 구분된다.

하노전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시선이 닿았다. 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 때문이었다. 세월에 풍화된 모습 그대로 그곳을 지키는 그림들이 아름다웠다. 쉬이 변하는 세상을 잠시 비껴난 기분이었다. 후벽 중앙에 그려진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앞에 섰다. 승려와 백성이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떠나는 모습이 담겼다. 자세히 보니 한 명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속세에 미련이 남아서라는 설명이 왠지 슬프게 들렸다.


반야용선도



영산전은 극락전 오른편에 자리했다. 안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눠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걸려 있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고 있는 자그마한 아기 부처의 모습이 보였다. 입관된 부처가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어 보이는 이야기도 담겼다. 조선 후기 통도사 화승들이 직접 그렸다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사찰의 가운데 공간인 중노전으로 들어섰다. 불이문을 나서기 직전 해설사가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마룻보를 떠받치고 있는 코끼리와 호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불이문을 들어설 때는 호랑이가 보이고, 나갈 때는 코끼리가 보일 겁니다. 각각 깨달음과 실천을 상징하지요. 절에서 배운 지혜를 바깥세상에 나가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통도사 불이문

통도사 중노전




중노전의 중심 전각인 대광명전은 다른 전각들 뒤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목조건물이라는데, 내부 들보에 화재를 예방하는 묵서가 쓰여 있어서 그랬다는 말이 전한다. 이후 통도사에서는 화마(火魔)를 방지하는 글귀가 적힌 종이로 소금단지를 밀봉해 처마에 올려둔다고 했다. 실제로 대광명전 앞 용화전을 살펴보니 처마 아래에 작은 단지가 놓여 있었다.



통도사 용화전 소금단지



대광명전에서 나와 상노전으로 향했다. 상노전에는 별도의 문이 없어 대웅전이 바로 나타났다. 대웅전은 건물 사면에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 있었다.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동쪽엔 대웅전(大雄殿), 서쪽엔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대웅전 현판 아래 있는 꽃살문과 처마 끝 지붕에 달린 연꽃 봉오리를 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사찰과 달리 불상이 없었다.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金剛戒壇)이 보이도록 한쪽 벽면을 유리로 만들어뒀다.


통도사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처마 끝에 달린 연꽃 봉오리

통도사 대웅전 꽃살문



금강계단은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개방하는 날이라 시간에 맞춰 금강계단으로 향했다. 흔히들 계단이라 하여 ‘오르내리는’ 용도를 생각하기 쉽지만 통도사 금강계단의 ‘계단’은 승려가 ‘계(戒)를 받는 제단’을 의미한다.

사각형 이중 기단으로 구성된 금강계단은 돌난간에 둘러싸여 있었다. 해설사는 가운데 종 모양 부도 안에 진신사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거닐며 한 바퀴를 돌았다. 세속의 발길이 드나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경건함이 전해졌다.


금강계단

사진 제공=문화재청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대웅전 앞에서 해설사와 헤어지고는 어제 그 댓돌에 다시 앉았다. 해설사가 주고 간 책자를 뒤적이는데 암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장율사가 통도사 창건에 앞서 수도했다는 자장암이었다. 걷기에는 너무 멀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10분쯤 달리다가 돌계단 앞에 섰다. 모든 번뇌를 내려놓으라는 108계단을 무심히 오르자 영축산 능선이 한눈에 담겼다.


통도사의 열아홉 개 암자 중 하나인 자장암

통도사 지장암


암벽 아래 자리 잡은 관음전은 아담하고 소박했다. 문지방을 그대로 관통해 방바닥 위로 솟아오른 바윗돌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을 그대로 살려 법당을 지은 탓이었다. 옆에는 크기가 4m에 달하는 마애불상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아래 서서 가만히 바라보자니 하회탈마냥 너털웃음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자장암은 불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보인다는 금와(金蛙)보살로도 유명하다. 법당 뒤편 암벽 구멍에 사는 개구리가 바로 금와보살이다.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햇살을 등지고 컴컴한 구멍 앞에 바짝 붙어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내 그만뒀다.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있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통도사 지장암 마애불상



택시를 타고 다시 통도사로 향했다. 버스터미널로 바로 갈까 하다가 그냥 일주문 앞에서 내렸다.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번졌고, 고요하던 경내는 더 고요해졌다.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마당을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맑고 청아한 목탁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저녁 예불 시간이었다. 힘차게 울리는 법고 소리와 범종 타종 소리가 계곡 사이로 울려 퍼졌다. 육중하면서도 경건했다. 소리가 깊어질수록 마음은 명징해졌다. 이제야 지나온 시간을 동여매고 새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소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전화 055-382-7182 홈페이지 www.tongdo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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