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4
여름향기 가시지 않은 9월,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
여름향기 가시지 않은 9월,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
평강식물원과 국립수목원, 추억의 산정호수 둘레길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아니면 밥 먹고 영화보고 차 마시고. 그것도 질렸다면 차 마시고 밥 먹고 영화 보면 된다. 여름 내내 무더위에 지쳐, 새로울 것 없는 ‘실내 데이트’ 만 했다.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다’며 폭염에도 ‘딱풀’ 처럼 붙어 있던 연인들. 이제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낼 때다.
영화, 밥, 차의 순서를 바꾸던 지리한 데이트는 잊자. 낭만과 추억, 그리고 아직 보내기 아쉬운 여름향기가 짙게 뿜어져 나오는 장소다.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로 떠나자. 호수가 목적지는 아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평강식물원, 광릉 숲에 자리한 국립수목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이지만, 시리게 푸른 숲은 아직 여름이 한창이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여름내 야외로 나서길 꺼렸던 사람이라면, 이제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볼 일이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식물원과 수목원은 늦여름이 선사하는 최고의 ‘힐링’. 또, 그 옛날 엄마 아빠의 데이트 코스였다던 산정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수줍은 ‘그들’을 떠올려본다. 이상도 하지, 왜 내 가슴이 두근거릴까.
글·사진 박동미(헤럴드경제 기자)
포천 산정호수
옛 운치는 그대로, 길은 걷기 편하게 업그레이드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는 데이트 코스의 ‘고전’이다. 영화·음악·패션 등 문화계 전반에 ‘복고 열풍’이 분다더니 옛 기억과 낭만을 슬쩍 건드리는 여행이 레저 문화에서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반드시 연인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함께 길을 걸을 ‘좋은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특히 산정호수 둘레길은 험한 산길도 아니고, 기약 없는 사색, 명상길도 아니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걸어도 좋다. 제아무리 나 홀로 훌쩍 떠나는 여행이 유행이라지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누군가와 함께 내딛는 발걸음은 또 다른 기쁨이 된다.
운치 있는 호반 둘레는 그 옛날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아련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풍경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다만, 호수 둘레 3분의 1 정도 길이에 수상 산책로가 생긴 게 큰 차이점. 산책로 초입의 높이 15m의 산정폭포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마치 동화 속 같다. 정면에 자리한 오래된 리조트는 최근 색을 바꿨다. 언뜻 어느 유럽 숲 속의 작은 성을 보는 듯한데, 아니나 다를까 ‘안시’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안시는 프랑스의 한 휴양도시다.
해가 지고 있는 호수에 은은한 조명이 켜진다. 손을 꼭 잡고 데크 위를 걷는 연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세월이 흐르고 조명은 수십 번 교체되었겠지만, 잔잔한 수면을 맴도는 연인들의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이들은 물 위에 떠 있는 ‘부력식’ 데크로드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광릉 국립수목원과 평강식물원
여름아 안녕, 아쉬운 작별인사
봄엔 꽃구경, 가을엔 단풍구경, 여름에는 수목원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계속된 폭염과 무더위에 섣불리 야외 나들이를 나서기 힘들었다. 지금은 여름향기에 흠뻑 젖을 마지막 기회. 포천에는 쉬엄쉬엄 걸으며 둘러보기 안성맞춤인 두 개의 숲이 있다. 하나는 산정호수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평강식물원이고, 또 하나는 포천 초입에 위치한 국내 최대의 산림 보고인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이다.
국립수목원은 산정호수로 향하는 길에 먼저 둘러보거나, 산정호수 평강식물원을 모두 구경하고 서울로 오는 도중에 들러도 좋다. 단 입장객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므로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쉰다.
광릉 숲을 보존하기 위한 국립수목원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는데, 설악산(1982년), 제주도(2002년), 신안 다도해(2009년)에 이어 국내 네 번째다. 광릉 숲은 조선 세조대왕이 묻힌 광릉의 부속림 중 일부로, 500여 년 이상 황실림으로 엄격하게 관리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덩굴식물원, 관상수원, 비밀의 뜰, 무궁화원, 난대식물 온실, 양치식물원, 침엽수원, 습지식물원 등 방대한 수목원을 꼼꼼하게 즐기려면 반나절 이상이 걸린다. ‘쉰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둘러보는 게 좋다. 무작정 걷지만 말자. 시원한 나무 아래 벤치에서 함께 걷는 이와 등을 맞대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는 건 어떨까. 넓디넓다. 욕심은 금물.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에 다시 오기를 기약하며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오자.
평강식물원은 국립수목원에 비해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의학 박사인 이환용 씨가 90년대 말부터 조금씩 가꾸기 시작해 2006년에 문을 열었다. 18만 평의 부지에 암석원, 들꽃동산, 고산습원, 자생식물원, 만병초원, 습지원, 잔디광장, 연못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암석원(1800여 평)과 60여 종에 이르는 화려한 수련들을 한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연못정원 등이 유명하다.
Tip
포천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그런지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여유 있게 호수 둘레를 걷고,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원까지 둘러보려면 1박 2일쯤 시간을 내는 게 좋다. 그래야 포천도 사람에게 제 아름다움을 더욱 드러낼 게 분명하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작은 폭포, 비둘기낭과 깎아지른 듯한 현무암 협곡 등 한탄강 8경의 신비로운 풍광도 놓치지 말자.
만약 1박 이상 머무른다면 산정호수 인근에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가 있다. 213개의 객실을 갖춘 이 리조트는 리모델링 후 지난 6월 재개관했다. 호수와 수목원, 식물원 탐방에 적합한 베이스캠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