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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스토리


발행호 445 호

2014.03.07

돌아서면 생각나는 서울의 그 거리들

인사동 거리 풍경, 부채·소품 액자 등을 파는 상가를 오가는 사람들

격변하는 도심의 문화지형에 대하여

돌아서면 생각나는 서울의 그 거리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중에는 새롭고 비싼 것도 있지만, 오래돼서 정이 가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오래된 것 보다 새롭고 비싼 것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래된 것들이 그 수명을 다해 사라져 버리면 그 허전함은 마음속에 남아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그때가 되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도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렇게 오래되고 익숙한 장소가 있습니다. 늘 지나치면서도 무심했던 인사동, 부암동, 평창동, 대학로가 그곳입니다. 오래되고 익숙해져,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거리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어 안 가봤던 그 거리들… 이달 ‘문화와 사람’에서는 독자 여러분을 그 정겹고 오래된 거리로 안내합니다.

글·사진 우현석(서울경제신문 객원기자·여행칼럼니스트)

‘목선이 늘씬하게 잘 빠진 고려청자와

조잡한 싸구려 옹기가 한데 어우러지고

누렇게 변한 한가로운 옛 문인화와

이름 모를 서투른 정물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곳,

삐걱거리는 오래된 반닫이 옆에

빛깔도 고운 세련된 한복이 놓이고,

가슴까지 뜨끈한 십전대보탕과

향긋한 에스프레소가 함께 유혹하는 곳,

상투 튼 노인이 햇볕 속에 졸며 앉아 있고

그 앞에서 귀를 세 개나 뚫은 젊은이들이 궁합을 보는 곳,

좁은 골목마다 버티고 있는 한옥 사이로

한두 시간쯤 족히 때울 수 있는 큰 갤러리가 숨어 있고,

잿빛 스님이 휘적휘적, 카메라 든 외국인이 두리번두리번,

소박한 가게의 고풍스런 서까래와

모던한 인테리어 장식이 동시에 눈을 잡아끄는 곳,

향 냄새, 된장 냄새, 꽃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

이제야 알겠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인사동에 가고 싶어하는지.

왜 인사동에만 가면 온갖 시름들이 다 날아가는지.’

부활을 꿈꾸는 인사동

인사동 문화 지도 - 안국역 6번 출구에 몰려 있는 은행과 갤러리를 표시해놓았다 - 상세 설명 이어짐

10여 년 전 디자인하우스에서 펴낸 책 <인사동 가고 싶은 날>이 서문에서 묘사한 인사동 풍경이다. 하지만 서울시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 시처럼 각인된 인사동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몸살은 지구 반대편 영국 왕족이 살고 있는 버킹엄 궁에서 시작됐다. 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해 한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고, 여왕의 행적이 매스컴에 보도되자, 문인과 예술가, 신문기자들이 주로 드나들던 인사동은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대중들의 발길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인사동 거리 풍경 - 골목길에 차와 사람이 뒤섞여 복잡하다

2002년 4월 인사동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지구로 지정됐고, 2004년 대학로, 2009년 파주 헤이리, 2012년 인천 중구 개항장이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인사동 사람 중 일부는 문화지구 지정이 성급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인사동을 문화지구로 지정하기 전 전통문화 보존과 컨셉 유지에 대해 체계적이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했었다”며 “커피전문점, 국적불명 상품 판매 등 비문화적인 요소를 차단할 수 있는 법규 정비가 미비한 채로 지구 지정을 해 지금과 같은 혼란을 불러온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인사 사거리 남쪽에는 중국과 일본관광객들을 겨냥한 화장품 가게 11개가 영업 중이다. 당국도 이 같은 조짐을 미리 감지하고 이동통신, 마사지 업소 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례를 제정, 인사동 사거리 북쪽 지역을 지켜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인사동의 한 상인은 이와 관련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랑은 큰길 뒤편으로 밀려나거나 인사동 밖으로 둥지를 옮기는 대신 정체불명의 업소들과 노점상 숫자는 크게 늘었었다”며 “지금은 이 같은 현상이 다소 진정됐지만 당시 생겨난 일부 업소들은 조잡한 중국ㆍ동남아산 기념품들을 팔고 있어 인사동을 국적 불명의 거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곳 사람들은 정체성 훼손의 원인을 앞서 지적한 임대료 폭등에서 찾고 있다. 임대료가 치솟자 화랑이나 골동품상 대신 영업이익률이 높은 커피숍이나 음식점들이 치고 들어 왔고, 뒤이어 국적불명의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인사동은 골동품 서화 등 예술품들이 모이고 거래되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며 “한때는 전국 화가들이 인사동에서 전시 한번 해보는 게 로망이었지만 최근 10년 새에 새로운 컬렉터들은 아트페어로 뺏기고 기존 컬렉터들은 옥션으로 뺏겼다”고 말했다.

인사동 쌈지길 - 마름모꼴로 지어진 4층으로 된 건물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희망은 싹트고 있다. 삼성화재가 매입한 옛날 대성산업 사옥 자리에 예술복합컨벤션센터(가칭)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보존회 앞마당의 주차장 자리에 건물을 지어 예술품 마켓플레이스(장터)를 계획하고 있다. 윤회장은 “마켓플레이스가 들어서고, 예술복합컨벤션센터가 완성되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며 “그때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는 아트페어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에 관심이 있어서 입장료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인사동으로 돌아와야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라며 “현대미술관과 인사동을 아우르고 화랑과 고미술품상 등이 있는 인프라를 활용하면 인사동은 부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쨌거나 현재로선 호떡과 솜사탕, 아이돌그룹의 브로마이드가 잘 팔리는 인사동의 날갯짓은 힘겨워 보인다. 아마도 인사동이 부활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문화와 시대정신이 이뤄놓은 아름다운 거리를 우리의 탐욕으로 파괴하는 쓴맛을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떠오르는 자하문 밖

인사동이 권토중래를 꿈꾸는 동안 자하문(이하 창의문) 밖 부암동과 평창동은 새로운 문화지역으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인왕산과 북한산 사이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평창동과 부암동에는 80년대 후반부터 미술관, 화랑, 그리고 공연장들이 줄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풍광만 놓고 보면 서울에서는 감히 어느 동네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풍기는 곳으로 유명했다. 부암동 창의문 쪽으로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새하얀 바위 얼굴을 자랑하는 인수봉이 눈부시고, 백사실 계곡에는 이곳의 원주민이자 주인 격인 1급수 지표종 도롱뇽이 살고 있다.

평창동·부암동 일대에는 세검정, 박종화가옥, 연화정사,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 있었던 백사실(백석동천)터 등의 역사·종교 유적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평창동 문화 지도 - 북한산 주변에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 영도미술관, 가인갤러리, 가나아트센터, 갤러리세줄, 김종영 미술관, 상원 미술관이 표시되어 있다

도심 속의 자연풍광에 역사 유적이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있는데 주목한 것은 미(美)에 대한 안목이 있는 미술관들이었다. 토탈미술관이 92년 개관한 데 이어 가나아트, 서울옥션 같은 대형 미술관들도 90년대부터 잇따라 들어섰다. 이응노미술관도 지난해에 문을 열었다.

가나아트갤러리 외관

가나아트갤러리 내부 - 누군가의 서재를 옮겨 놓은 듯한 구조이다(그랜드피아노, 테이블, 탁자, 벽에 걸린 사과 그림)

유명작가들도 속속 둥지를 틀어 현재 평창동의 미술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평창동 일대에 사는 미술인은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터줏대감으로는 76년 이곳에 들어 온 서울대 윤명로 교수와 서양화가인 부인 한승재씨가 꼽힌다.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 박인경씨도 이응노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이곳에 살고 있고, 김창렬·강대운·김봉태·이종상·송수남·오경환·박대성·김경희·임옥상·전병현·강애란 화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화랑 운영자로는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가 91년 평창동에 둥지를 틀었고, 토탈미술관의 노준의, 가나아트의 이호재, 노화랑의 노승진,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그로리치의 조희영 사장 등도 이곳에 살고 있다.

부암동 문화 지도 - 상세 설명 하단 참조

아울러 지역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문화공간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부암동 주민센터 뒤편 무계원이 바로 그곳이다. 무계원은 원래 익선동에 있던 요정 오진암이 헐리면서 그 자재의 일부를 가져와 복원한 곳으로 지역의 품격을 높일 전망이다.

원래 오진암은 청운각, 대원각, 삼청각과 함께 일세를 풍미했던 요정으로 협객이자 정치인이었던 김두한의 단골집이었고, 7·4남북공동성명이 논의됐던 역사적 장소였다. 애초 이 건물은 오진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 했지만 지역주민들이 요정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해 당호를 무계원으로 바꾸게 됐다.

부암동 무계원 외관

조만간 문을 열 무계원의 이름은 바로 옆에 있는 안평대군의 별장터의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武溪洞)에서 따왔다. 이곳은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별장터로 안평은 이곳에서 잠을 자다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보았고, 그곳의 풍경을 화가 안견에게 설명해 대작 <몽유도원도>가 탄생하게 됐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무계원 관리직원 전덕진씨는 “무계동은 전통문화와 예술을 전수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다도, 예절, 산수화, 민화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가 지역주민들과 조화를 이루는 현장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평창동과 부암동,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은인자중했어도, 서울 한복판에서 고즈넉한 문화의 향기를 풍기는 이곳이 매스컴의 촉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매스컴의 조명은 그렇잖아도 인사동 일대의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소규모 화랑들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부동산값에 불을 질렀다.

부암동 관광안내를 맡고 있는 김미자 해설사의 말이다. “부암동, 평창동은 10년 전 만 해도 집값이나 땅값 상승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네였다. 강남아파트는 한 채에 10억을 웃돌 때 이 동네 단독주택 한 채는 3억~4억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 프린스> 등과 영화 <은교> 등이 촬영되고, 모 방송사의 인기 프로가 이 동네의 풍경과 운치를 소개하자, 난리가 났다. 내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카페들이 들어섰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지금은 평당 2,000만~3,000만원하는 단독주택도 있다”

부암동 창의문 출입구

이에 더해 성곽길이 개방되면서 자하문 고개 위의 진출입로를 이용하는 등산객들, 갤러리를 찾는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공휴일에는 갓길주차로 도로 폭이 좁아지고, 교통경찰이 나와 차량운행을 정리해야 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고조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모든 곳이 강남처럼 강화유리와 시멘트로 포장될 필요는 없다는 것, 아파트가 없어도, 대형마트가 없어도, 또 지하철역이 없어도 삶의 질이 담보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문화적인 삶은 그런 가운데서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서울시민의 문화적 눈높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돈의 액수로 계량되고, 부동산값이 치솟고, 그 다음엔 예외 없이 요식업소들이 문화공간을 밀어낸다면 평창동과 부암동의 보존 또한 담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로에 선 대학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이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구간에 걸쳐 형성된 대학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웨스트엔드이자 브로드웨이다.

대학로는 지난 75년 서울대 문리대ㆍ법대가 신림동의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 마로니에공원으로 새로 꾸며진 자리에 문예회관 등 연극 전용극장 30여 개소가 들어서면서 연극, 뮤지컬 등을 상연했고, 이제는 그 숫자가 더욱 늘어 서울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임대료가 오르면서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터를 잡고 있던 155개의 소극장들 중 50여 곳이 북쪽으로 밀려나 혜화동과 명륜대 일대까지 진출하고 있다. 소극장들은 주로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에 세를 들어 있는데 이제는 그곳마저 상대적으로 높은 수입을 올리는 주점과 음식점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데 따른 것이다.

대학로 문화 지도 - 상세 설명 하단 참조

이처럼 혜화동과 명륜동 쪽으로 소극장들이 북진하면서 카페 등 요식업소들까지 따라가는 중심상권 이동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종로구는 신축건물 지하를 소극장으로 활용하면 용적률을 높여 건물을 크게 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소극장의 감소추세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렇다고 이 같은 추세가 질적 안정을 담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와 관련 정대경 소극장협회이사장은 “중소극장의 숫자가 감소세를 멈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상당수 극장이 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세팅되는 경우가 많아, 문화공간으로의 질적 저하는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외관

대학로 공연문화의 쇠락은 거대 자본의 문화시장 잠식과도 맞물려 있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공연기획사들이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면서 자본과 마케팅 능력이 못 미치는 중소극장들이 위축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문화구역의 쇠락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 쉽게 답할 수는 없다. 과거 명동 일대에 몰려 있던 극장들이 그 지역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오늘날의 면모를 갖춘 것을 생각하면 이 같은 진통은 도시와 문화공간이 성쇠(盛衰)를 되풀이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석 가천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대학로, 인사동에 젊은이들이 몰리니 그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업종이 몰리는 것”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제한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국이 규제 등 공권력을 동원해 지역을 보존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정교수는 “대학로든 인사동이든 그곳 구성원들이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수익을 좇다 보면 지역적 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훼손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마로니에공원 전경 - 육각형의 나무바닥에 동그란 의자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을 걸어가는 사람들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해서 지혜를 모은다면 지역사회는 결국 그들의 의도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사동, 평창동, 부암동, 대학로가 지금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시나브로 상업지역으로 탈바꿈해, 지금의 품위를 잃어버릴지는 결국, 우리의 판단과 의지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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