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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스토리


발행호 482 호

2017.07.06

나를 위한 하루

창가에 걸려있는 대나무 블라인드 

 

나를 위한 하루

 

글, 사진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서늘한 대숲 그늘에 들어선 정자의 툇마루.

거기에 조용히 앉아서 누군가와 바둑돌을 놓으며 보내는 느긋한 휴가를 생각해본다.

처마 끝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날, 한옥 마루에 책을 베고 누워 혼곤한 낮잠에 빠지는 휴가는 또 어떨까.

 

이제는 휴가마저도 스트레스다. 행복한 휴가가 SNS로 실시간 생중계되는 세상.

남들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멀리 떠나서 더 바쁘게, 더 화려하게, 더 고급스럽게 놀아야 남을 이길 수 있다.

내가 남을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고, 다른 이들이 나를 부러워해야 이기는 것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과 에너지로 봐도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휴가란 치열한 경쟁의 삶에서 잠깐 물러서는 일.

그러니 휴식에다 등급을 매겨 다시 경쟁을 한다는 거야말로 허망한 일이다.

 

경쟁으로 순위를 매기기에는, 휴가의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가족들과 자연 속에서 소박한 며칠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산을 오르거나 걷기 여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 허벅지가 터질 듯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있고 모처럼 주어진 시간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이들도 있다. 그게 어떤 것이 됐든 휴가란 모름지기 지친 몸이나 마음을 고요한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들판에 핀 수많은 맥문동과 보라색 맥문동꽃 

 

 

휴가에 대해 말하면서 이름난 피서지가 아니라 경북 성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거기 고요하게 쉴 수 있는, 숨겨 두고 싶은 매혹적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휴가철에도 성주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이다. 성주가 외지인들에게 알려진 건 고작 참외쯤일 것이다.

 

성주에서 한눈에 반할 만한 한옥 두 채를 만났던 건 뜻밖이었다. 한 채의 한옥은 집의 깊이를 높이로 구현해 낸 ‘사우당종택’이고, 다른 하나는 문을 들어선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소박한 한옥 ‘아소재’다.

 

사우당종택은 다른 한옥들과 전혀 다르다. 집은 깊었고, 그 깊이가 특이하게도 높이로 구현됐다. 문간채에서 사랑채로, 거기서 다시 안채, 그리고 서당, 그 뒤의 대나무 숲 안에 재실이 서 있다. 건물은 순서대로 각기 단(檀)을 이루며 높아졌다. 깊이 들어설수록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옥에 현대적인 미감이 살짝 얹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사우당종택을 멀리서 본 풍경, 분홍색 꽃이 핀 나무와 초록나무들 사이로 기와집이 여러 채 있다 

 

숨기고 가리는 대신 높이고 드러냈음에도 집은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 유순하고 우아하게 바깥을 향해 열려 있다. 안으로 깊이 들어설수록 숨는 것이 아니라, 높이 드러내며 바깥과 오히려 더 가까워진다는 얘기다.

 

 

사우당종택에서 멀지 않은, 가야산 아래 끊긴 길 안쪽에 ‘아소재我蘇齋’란 현판을 건 한옥이 있다. 이름을 풀어보면 ‘나를 살리는 집’ 쯤이 되겠다.

아소재는 담박한 집이다. 화려한 치장 없이 수수하다. 종택의 한옥처럼 멋스럽게 지어진 것도 아니고, 오래 묵은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집이 이 자리에 서게 된 내력도 이제 막 30년을 넘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아소재가 매력적인 건 집이 한없이 느슨하고 편안하다는 것이다. 아소재는 그 집에 들어선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게끔‘ 만든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담도 경계도 없는 집. 그 집은 처음 온 사람이라도 곧 익숙한 제집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마술처럼…

 

 

아소재 외관 전경 

 

오랫동안 반질반질 닳은 집은 사람의 몸을 편안함으로 받아낸다. 편안하다는 건 곧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 이런 시간이 만들어내는 건 자신의 호흡을, 걸어온 발자국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다.

휴가 때 집에서 쉬나, 나가서 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때로는 ‘충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 일상의 고단하고 버거운 무게가 방전 때문만이 아니라, 때로는 방향의 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한옥 처마로 떨어지는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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