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3
초록이 번지다, 달빛이 스미다-대청호반길 1코스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
대청호(大淸湖)는 이름만큼이나 시리게 맑다. 호수와 숲 사이, 낮과 밤 사이, 그리고 걸으며 가까워지는 사이. 누군가와 다정스레 대화를 하거나, 홀로 계절을 사색하기 좋은 길이다.
글, 사진 박산하(여행작가)
대청호반길 1코스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 | 6km, 약 1시간 40분 소요
모든 구간의 이동 시간은 도보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입니다.
대청공원에서 시작해 양쪽 끝에 있는 호반가든과 대청댐물문화관을 왕복하는 길이다. 대청호를 끼고 울창한 나무 아래를 걷는데 대청댐과 공원을 따라 데크가 잘 만들어져 있다. 은은하게 나는 나무와 물 냄새를 맡으며 힐링하기 좋다. 물문화관 앞과 공원엔 넓은 잔디밭과 벤치 등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어둑해지면 데크에 조명이 켜져 밤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여름 공원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
아무리 일이 바쁘고, 마음이 복잡해도 공원에 들어서면 이상하게 고요해진다. 공원만큼 한갓진 공간이 있을까. 잔잔하게 깔려 있는 평화로움 사이 살짝 들뜸이 느껴질 뿐.
대청호반길 1코스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는 대청공원에서 시작한다. 길은 넉넉하게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지만, 좀 더 머물고 싶다면 공원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로하스 해피로드에서 로하스(LOHAS)는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를 의미한다. 건강한 삶과 환경 보존을 동시에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거기에 행복이 더해졌으니, 완벽하게 힐링을 위한 길이다.
대청호를 끼고 걷는 로하스 해피로드
기차 신탄진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대청공원으로 향한다. 부드럽게 구불거리는 도로 위, 초록 터널을 지난다. 창으로는 대청호의 옅은 물 냄새가 맡아진다. 꽤 근사한 드라이브 코스다. 20여 분 달렸을까. 대청공원 앞에 내렸다. 오후의 볕이 따갑다. 공원 입구엔 넓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다. 다들 어딘가의 그늘 아래에 숨어 있는 듯.
대청공원은 2011년에 만들어진 자연생태 공간이다. 가족나들이는 물론 학생 현장학습, 직장인 야유회 등 대전 시민에게는 익숙하고도 아늑한 곳이다. 공원 내에 있는 대청문화전시관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잔디광장은 마음껏 뛰어다니기 좋을 정도로 드넓다.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인다. 암석원은 수목한계선에 자라는 고산 식물과 저지대에서 건조한 암석이나 모래, 땅에 서식하는 독특한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을 겸한다.
나무가 우거져 있어 한낮에도 덥지 않은 데크길
공원 한편에는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어 사색하며, 혹은 이야기를 나누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이곳 공원에서 금강 로하스 걷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봄꽃으로 화사해질 무렵, 호수의 알싸한 물바람을 맞으며 걸었다면, 올 한 해를 기쁘게 시작할 마음을 얻었을 것이다.
대청문화전시관에서 대청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는 공원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 대청댐과 호반가든을 찍고 오는 길이다. 길이는 짧지만 왕복 구간 덕분에 약 6㎞를 걸을 수 있다. 길은 대부분 단단한 데크로 이어져 있다. 올해 조성된 대청오백리길 21구간 대청로하스길과 겹쳐지는 길이기도 하다. 대청댐으로 향하는 길, 대나무 터널을 지나 전나무숲과 소나무숲을 스친다. 숲이 주는 위안은 제법 깊다.
거대하고 맑은 호수를 따라 걷는 길
대청호는 충주호와 청풍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호수다. 1980년 대청댐이 지어졌는데 대전광역시와 청주시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철새와 텃새가 많이 날아드는 새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청호는 금강(錦江)에서 흘러온 것이다. 유난히 반짝이는 금강은 그 이름처럼 비단결같이 유연하고도 보드랍다. 하지만 금강의 유래는 다른 데 있단다. 예부터 금강을 웅진강(熊津江)이라 불렀는데 금강의 ‘금’은 곰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대청호
데크길 위엔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대청댐 앞에는 물문화관이 있어 대청호과 댐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각시붕어, 버들붕어 등이 서식하는 대청호의 어류 생태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댐이 지어지면서 사라진 압실마을 사진도 볼 수 있다. 당시 이장님이 찍은 아련한 흑백사진에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이 느껴져 먹먹해진다.
다시 대청공원으로 돌아가는 길. 방금 걸어온 길이지만 시선은 정반대가 되니 낯선 길이 되고 만다. 물바람에 나뭇잎들이 자잘하게 펄럭이며 부채질을 해준다. 공원의 끝, 370여 m구간은 데크 보수 중인데 올 9월 23일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원을 빠져나와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키 작은 배나무밭을 지나고, 장독들을 잔뜩 이고 있는 낮은 집을 지나, 승객이 뜸한 작은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대청댐물문화관으로 가는 길
달빛 스민 대청호, 본연의 숲을 만나다
볕이 좋은 동네에는 과일나무가 많다. 복숭아 농가에서 잠시 쉬어간다. 말랑하게 잘 익은 복숭아는 2개에 1000원이란다. 덤으로 2개를 더 주는 주인장의 인정에 따뜻한 말이 오간다. 평상에 앉아 갓 딴 복숭아를 먹으니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 그 옆엔 옛 대청파출소 자리에 올봄에 오픈한 미호동 정다운 마을쉼터가 있다. 쉼터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음료 등으로 소소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주인의 아이들인 올망졸망 삼남매는 편의점이 놀이터인 듯 이곳저곳 뛰어다닌다.
길 위에서 만난 소담한 꽃
유난히 과일나무가 많던 동네, 복숭아가 달큼하다
마을쉼터를 끼고 다시 데크길을 향해 100여 m를 갔을까. 복숭아밭을 지나 기품 넘치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철조망이 둘러 있어 잘 볼 수 없지만 차씨형제정려각과 미호서원유허비도 서 있다.
해가 호수 건너편으로 숨어 들어가듯 서서히 사라진다. 호수와 가까워지니, 눈앞엔 세상 밖인 듯한 몽환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왕버드나무들이 호수 안에서 반쯤 몸을 내민 채, 고요히 숨을 내뱉고 있다. 물안개가 수평선 위로 가만히 내려앉는다. 노을이 강 위에 살며시 닿으며 분홍빛을 낸다. 이런 풍경이라면 매일 저녁마다 찾아와 해지기를 기다리고 싶다. 숨 막히는 조용한 풍경에 푹 빠져 있을 쯤, 수달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거친 숲은 다시 애니메이션 속 거짓말 같은 장면으로 변한다.
어둠이 더해지자 데크에 띄엄띄엄 불이 켜진다. 색색이 변하는 조명이 길을 물들인다. 달빛 아래, 숲 냄새와 물 냄새가 깊숙해진다. 이제야 가장 순수한 숲을 만난 것 같다.
노을이 잔잔히 내려앉은 왕버드나무 군락지
금강 로하스 해피로드 가는 길
KTX
용산~신탄진 하루 3회 운행. 약 1시간 45분 소요.
서울~신탄진 하루 15회 운행. 약 1시간 55분 소요.
* 신탄진역에서 72, 73번 버스 승차. 금강로하스대청공원 정류장 하차(약 20분 소요)
※ ‘걷기여행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매달 선정하는 걷기 좋은 길 10선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소개합니다.
걷기여행길 10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종합안내포털(www.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