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07.29
[사람과 길] 백제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역사기행
충청남도 공주는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다. 드넓은 만주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 삼국을 통일해 한반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한 신라에 비해 백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백제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역사기행
공주 공산성 길 & 백제 무령왕릉 길
충청남도 공주는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다. 드넓은 만주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
삼국을 통일해 한반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한 신라에 비해 백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그렇지만 백제는 군사적으로 고구려와 당당히 맞섰고, 문화적으로 찬연한 고대 문명을 꽃피워 해외로
수출했다. 최근 '한류(韓流)'로 일컬어지는 한국문화의 세계화 흐름의 원조는 백제인 셈이다.
공주는 백제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공주를 수비하기 위해 축조한 공산성,
그리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한편 경제기반을 닦아 놓은 백제 무령왕(재위 501년∼523년)의 능이
바로 공주에 자리하고 있다.
글·사진 지유석(자유기고가)
공산성, 그리고 무령왕릉을 따라 난 길을 걷고 있노라면, 문화강국 백제를 건설했던 백제인들의 기상이 절로 느껴진다. 공산성에 오르면 공주를 관통해 흐르는 금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공주 시내도 한눈에 들어온다. 건축에 문외한이어도 공산성에 오르면 이 성이 군사적 목적에 충실했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공산성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백제 문주왕은 475년, 한성(현 서울)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천도한다. 고구려와의 세력다툼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새 도읍지로 천도한 백제는 새 도읍인 웅진을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공산성은 바로 이런 필요의 산물이었다. 공산성은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기까지(538년) 5명의 왕을 거치며 약 64년 동안 도읍인 공주를 굳건히 지켜왔다.
백제를 지켜준 공산성은 훗날 조선시대 때 인조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조반정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반정공신 이괄이 난을 일으켰고, 이에 인조는 난을 피해 황급히 이동했는데 그때 피난처로 이용했던 곳이 바로 공산성이었다.
공산성은 석성 1,930m, 토성 730m 총 길이 2,660m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 가지런히 쌓여 있는 석축은 지금 보아도 견고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군사 시설 특유의 무뚝뚝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성벽이 연출하는 곡선은 유려하기 그지없고 산을 에워싸고 있는 듯한 형태여서 자연미도 잘 가미돼 있다. 문화강국을 건설한 백제인들의 심미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공산성을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산을 에워싸고 있어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에 나선 행락객, 그리고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백제인들의 혜안과 기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 백제는 고구려,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서 백제가 한반도에서 꽃피웠던 찬연한 문화를 되돌아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지난해 9월18일부터 한 달간 공주, 그리고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옛 사비)를 중심으로 세계대백제전이 열렸고, 올해에도 백제문화제를 성대하게 열 예정이다. 물론 세계대백제전과 백제문화제의 중심지는 공산성이다.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공주, 공산성만 보고 발걸음을 돌리기엔 너무 아쉽다. 공주는 그야말로 백제 문화의 보고여서 더욱 그렇다. 공산성에서 내려와 무령왕릉으로 향한다. 백제 문화의 정수는 무령왕릉에 고스란히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공주 무령왕릉은 사적 제13호로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의 합장릉이다. 무령왕은 '백제'라는 국가의 기틀을 놓은 성왕이다. 무령왕의 아버지인 동성왕은 신진세력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다 도리어 신진세력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무령왕은 즉위하자마자 구세력들을 등용해 신구세력 간 균형을 이뤘고, 이런 기반 위에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웅진, 즉 현재의 공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한강 유역을 잃었다. 무령왕은 금강, 그리고 호남평야로 눈을 돌렸다. 금강유역과 호남평야를 개발하기 위해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유민들을 귀농시켰다. 이렇게 정착한 유민들은 고스란히 농업 노동력으로 흡수됐고, 이 농업 노동력은 국가의 조세 기반이 됐다. 무령왕 재임 동안 백제는 부흥을 맛봤다. 백제인들이 무령왕을 기린 건 당연했다.
무령왕릉은 굉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잘 정돈된 왕릉 주변은 과거 무령왕이 백제인들에게서 받았던 존경을 느끼게 해준다. 무령왕릉은 또 보물창고이기도 했다. 무령왕릉에서는 총 108종 2,096점의 유물이 출토됐으며 출토 유물 가운데 12종 22점이 국보로 지정됐다. 현재 무령왕릉은 출입이 제한돼 있다.
무령왕릉의 모습은 부설된 무령왕릉 모형관에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모형관에는 무령왕릉을 비롯한 5, 6호 고분군을 1:1로 모형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직접 내부로 들어가 관람할 수 있도록 꾸몄다. 또 무령왕릉의 축조 방법 및 무령왕의 생애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해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상설 전시돼 있다. 공산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령왕릉에서도 가족 단위로 찾은 관람객들과 멀리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눈에 띈다. 그저 이 아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혹은 학교의 지침에 따라 끌려 온 것이 아니라, 과거 세상 어느 나라 못지않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자랑스런 선조들의 체취를 한껏 만끽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기만 하다.
역사기행은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여정이다. 공산성 성벽길을 걸으면서, 무령왕릉으로 난 길을 돌아보면서 백제인들의 속삭임을 들어보라. 후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해야 할 일은 과거 옛 백제인들의 숨결을 오늘에 되살려 다시 한번 이 나라를 문화강국으로 발돋움시키는 일이다.
[찾아가는 길]
공주는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부터 30~40분 간격으로 공주행 버스가 출발한다. 시간은 약 1시간 50분 소요. 공주는 소도시이기에 하루면 공산성,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등 주요 관광지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출발 전, 사이버 공주 홈페이지(cyber.gongju.go.kr/gongju)에 들러보자. 관광지는 물론 음식, 숙박 등 공주에 관한 모든 정보가 수록돼 있으며, 공주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티투어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