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10.04
[사람과 길] 청송 외씨버선길 1구간
청송은 경북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군이다. 동해안에서는 한참 내륙 쪽이고, 한반도의 내륙을 종단해 춘천에서 대구로 달리는 중앙고속도로권에서는 한참 동쪽에 치우쳐 있다. 수도권이나 서남해안 쪽에서 보면, 그만큼 가기도 어렵고, 여행지로 떠올리기도 쉽지 않은 머나먼 고장이다.
청송 외씨버선길 1구간
글·사진 이병학(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청송은 경북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군이다. 동해안에서는 한참 내륙 쪽이고, 한반도의 내륙을 종단해 춘천에서 대구로 달리는 중앙고속도로권에서는 한참 동쪽에 치우쳐 있다. 수도권이나 서남해안 쪽에서 보면, 그만큼 가기도 어렵고, 여행지로 떠올리기도 쉽지 않은 머나먼 고장이다.
고속도로 달리고 국도 굽이돌아 대도시 소도시 거쳐 물길 산길 돌아가면 푸른 솔바람 가득 담긴 마을이 나타난다. 청송의 가을은 푸르고도 붉어서, 물길 산길로 이어진 숲길 걸으며 사과향기 실려오는 맑은 공기 쐬며 걷기에 좋다. 외딴 곳 옛 도시에 남은 선인들 발자취 둘러보며 한나절 걸을 수 있는 마을길·숲길을 소개한다. 외씨버선길(영월~봉화~영양~청송) 청송 1단계 구간이다.
청송읍에서 출발해 청송한지체험관까지 이어지는 13㎞ 코스. 도심길과 마을길, 강변길과 산길이 두루 포함돼 있어, 줄창 숲길 걷기만 선호하는 분들이나 산길 오르기를 즐기는 분들에겐 다소 흥미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이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든든한 연결고리이자, 옛 이야기들이 흐르는 따스하고 푸근한 고향의 품 같은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또 다른 걷기 재미에 빠져들 수 있을 터이다. 느리게 걷고 두리번거리며, 만나는 사람마다 말 걸고 귀 기울이며 공기 맑고 유서 깊은 고을을 산책해 보자.
출발점은 읍내 거리 한복판이다. 청송도호부가 자리했던 고도의 흔적을 먼저 살펴보게 된다. 운봉관과 찬경루를 만난다. 운봉관은 옛 청송도호부의 객사 건물로 조선 세종 때 처음 지어진 것이다. 가운데 정청과 좌·우 양 익사로 이뤄진 객사 건물은 우익사만 옛 모습이다. 정청과 서익사는 일제 강점기에 헐렸던 것을 2008년 복원했다. 객사 앞쪽엔 바윗자락에 지은 대형 누각 찬경루가 있다. 바위의 경사면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앉힌 누각이 흥미롭다. 누각에선 용전천 물길과 건너편의 바위절벽 현비암, 보광산 자락이 바라다보인다.
찬경루란 이름엔 청송 심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청송은 조선시대 4명의 왕비와 13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도 이 중 하나로, 현비암은 소헌왕후를 상징한다. 보광산은 청송 심씨의 시조묘가 있는 곳으로, ‘찬경루’란 이름은
‘보광산의 소헌왕후 시조묘 쪽을 바라보니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객사 옆엔 선정을 펼친 옛 관리들의 행적을 적은 불망비·선정비들을 모아 놓았다.
객사를 나와 읍내 거리를 걷는다. 거리 인도에서 말린 고추를 늘어놓고 파는 상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청송은 사과의 고장이기도 하고 청양고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청양고추의‘청양’은 대표적인 고추 산지 ‘청송’과 ‘영양’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 한다. 용전천 물길 건너기 전, 청송장에 들른다. 청송장(4, 9일장)은 진보장(3, 8일장)과 함께 청송의 대표적인 오일장이다. 내외관이 깔끔하게 정리된 현대식 시장이지만, 장날이면 주변 마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모여들어 채소, 과일 좌판을 벌이는 정겨운 장터가 된다.
현비암 바라보며 월막교 건너 용전천변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다. ‘수달 생태공원’이라 이름 붙인 2.8㎞ 길이의 강변 산책로다. 가로수로 심어진 어린 벚나무들이 붉고 노란 잎들을 달고 이어진다. 강변길에선 메뚜기들이 제철을 만났다. 벼메뚜기도 송장메뚜기도 이리 뛰고 저리 날며 난리들인데, 길섶 풀잎에는 방아깨비·사마귀들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메뚜기 밟을라 조심조심 걷는 길 옆으론, 삼색 코스모스들이 구름처럼 피어나 하늘거린다. 물길 벗어나 대추나무밭·콩밭·깨밭·고추밭·사과나무밭으로 이어지는 논길엔 가을 내음이 물씬하다. 가을 내음은 물씬해도 정작 논길에선 메뚜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농약 때문이다. 지독했던 폭우를 견뎌낸 벼이삭은 묵직하고 믿음직스럽게 영글어 고개를 숙였다.
건물 외벽에 사과 그림 그려진 하수종말처리장 바라보며 숲길로 올라 농가 지나 잠시 걸으면, 소나무 거목들이 짙은 솔바람을 내뿜는 벽절정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벽절 심청 선생을 기려 세운 정자다. 벽절정 뒤 별동산 너머에 송소 고택으로 잘 알려진 마을 덕천리가 있다. 여기서 덕천리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별동산으로 올라 주민들이 마련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거나, 다시 돌아나가 914번 지방도 만나 찻길 옆으로 조성한 샛길 따라 가면 된다.
덕천리는 청송 심씨 집성촌으로, 지난 6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전통마을이다.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이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지었다는 아흔아홉칸의 한옥 송소 고택과, 1933년 지은 찰방공 종택 등 아름다운 한옥들이 즐비하다. 안동에서 시집왔다는 찰방공 종택의 김순한(58·덕천1동 동장) 씨가 권하는 포도를 맛보며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을 주민 90% 이상이 청송 심씨라예. 우리 집이 이 바닥에선 종택인데, 주민들이 다 20촌 안쪽의 한집안이지예”고택들의 수많은 방은 사철 한옥숙박 체험용으로 개방된다. 숙박객들은 전용 식당인 소슬밥상에서 식사하며 천연염색 체험을 할 수 있다.
청송 가을 경치의 주인공은 사과밭이다. 모든 길이 사과밭을 품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을에도 산자락에도 사과밭이 깔렸다. 용전천 강변길을 걷는다. 용전천은 늦여름이면 저녁마다 반딧불이들의 춤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덕천교 부근에서 반딧불이가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물줄기를 길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론 수확 끝난 허전한 논과 밭이 이어진다. 강변길은 그냥 걷기엔 다소 지루한 길이다. 논밭에서 가을걷이에 나선 주민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청해 들어볼 만하다. 상주~영덕고속도로 다릿발 공사장을 지나면 강변길이 마무리되고, 중평교 건너편 중평마을(중뜰) 들머리에 쉴 만한 소나무숲이 기다린다. 200년 됐다는 중평솔밭 앞에 정자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평산 신씨 집성촌인 중평마을에도 판사공파 종택, 서벽 고택, 사남 고택 등 고래등 같은 고택들이 기다린다. 중평마을은 일제 강점기 한때 파천면 소재지(1914~1936년)였던 마을이기도 하다. 강변길 따라 걷다 물길로 내려서서 징검다리 건너면, 파천면 소재지인 관리로 들어서게 된다. 외씨버선길 안내 팻말은 다시 논길과 고추밭길이 이어지는 강변길로 안내한다. 고추밭에서 만난 서춘대(71) 할아버지가 산자락 고개를 가리켰다.“ 저 한티고개길이 아주 오래된 길이라. 40년 전까지 소구루마 끌고 넘어다녔지”한티고개 숲길로 오른다. 빨간 물봉선들이 반기는 산길은 넓고 완만한데, 어두울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고개 꼭대기엔 ‘소망의 돌탑’이란 팻말을 곁에 두고 돌무더기가 잔뜩 쌓여 있다. 옛날 신기리·옹점리의 어린이들이 이 고개를 걸어 넘어 관리로 통학할 때, 오고 가며 고개 위에 돌을 주워 쌓아놓으면, 고개 밑 밭에서 일하던 부모들이 찾아가 쌓인 돌을 보고는 자녀의 통행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고개에서 좌우가 온통 사과밭인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 사과가 한창 익어갈 무렵이면 곳곳에서 볼륨 높인 라디오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곳이다. 외씨버선길 탐사팀장 김순주 씨는 “산자락에서 난데없는 라디오 소리가 나면, 거기가 사과밭이라고 알면 된다”고 했다. 사과를 노리는 새들을 쫓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라디오 소리는 때때로 폭약 터지는 굉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내려가면 들길은 신기1리로 이어진다. 신기1리는 볼거리 많고 이야깃거리 많은 마을이다. 400년 넘은 거대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낡은 흙벽이 그대로인 방앗간과 옛 우물, 정겨운 돌담 등이 곳곳에 남아 있고, 17살에 시집와 병든 시아버지를 자신의 젖을 짜 먹이며 봉양했다는 며느리를 기린 효부각도 있다. 마을 청년회장 황현태(50) 씨가 거대한 느티나무 옆에서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어르신들도 나무 옆을 지날 땐 고개를 숙이죠. 군대 갈 때도, 새 차를 뽑을 때도, 이사를 와서도 정성 들여 제를 올리는 나무입니다”
신기리는 전통 한지 생산지이기도 했다. 1920년대까지도 20여집에서 참닥나무를 이용해 한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외씨버선길 1단계 구간 종점이 청송한지 체험장이다. 이자성 전통한지 장인(무형문화재 23호)이 7대째 한지를 만들고 있다. 한지 만들기체험, 한지 공예체험도 진행한다.
TIP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원주 만종분기점 중앙고속도로 타고 대구 방향으로 내려가다 서안동 나들목에서 나간다. 34번 국도 타고 안동시내 거쳐 임하호 지나 청송 진보면소재지 진안사거리에서 31번 국도 만나 우회전해 청송읍으로 간다.
묵을 곳
송소고택(054-874-6556), 찰방공종택(054-873-6502) 등 파천면 덕천리 고택들에서 묵을 수 있다. 1박 7만원 안팎. 청송읍 주변에 주왕산관광호텔과 여러 모텔들이 있다.
먹을 곳
청송읍 월막리 수궁식당(054-872-3010) 차돌박이청국장 9000원, 쌈밥 7000원 / 파천면 관1리 남해식당(054-872-3238) 메기매운탕 2만5000~3만5000원, 추어탕 6000원 / 진보면 소재지 명동식당(054-872-9797) 골부리국(고디탕·다슬기국) 5000원 / 청송읍 부곡리 달기약수탕 주변엔 약수를 이용해 토종닭백숙을 내는 집들이 있다.
여행문의
경북 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 탐사팀 054-683-0031, 청송군청 문화관광과 054-870-6240, 파천면 신기1리 청년회장 황현태 씨 010-2558-3763, 청송한지체험장 054-872-2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