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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91 호

2018.04.05

화려하지 않은 고백, 남원 연서戀書

화려하지 않은 고백 남원 연서


감칠맛 나는 볼거리는 없지만 여운을 남기는 도시가 있다. 남원이 그랬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은은한 기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란하지 않아 편안했고, 투박해서 더 근사했다. 풋풋했던 시절의 기억들을 들춰보는 기분이었다.

글, 사진 박은경



봄볕 핀 광한루에서 사랑을 읽다


한 도시에서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동네를 알 것 같아’라며 확신에 찰 때가 있다. 남원을 걸으면서도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연애편지를 펼쳐놓은 듯 애틋한 분위기가 온몸으로 읽혔다.

너무도 잘 알려졌듯이 남원은 조선시대 로맨스 소설 ‘춘향전’의 무대다. 익숙한 만큼 새로울 게 없는 풍경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원을 고전에나 등장하는, 그저 그런 오래된 도시 정도로 폄하하기엔 아쉬움이 짙다. 게다가 그 계절이 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봄날의 남원은 꽃도 넘치고 사랑도 넘친다.


광한루원 오작교

광한루원 오작교.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랑의 도시 남원에서 가장 애틋한 장소는 광한루원이다. 소설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나 사랑을 맺은 바로 그곳이다. 잔잔한 연못 주변으로 광한루와 오작교, 완월정, 춘향사당이 자리를 잡고 앉아 옛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광한루는 애초 남원으로 유배된 황희 정승이 광통루(廣通樓)란 이름으로 세웠다. 이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그 수려한 풍광에 반해 광한루(廣寒樓)로 고쳐 불렀다. 달나라에 있는 궁궐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에서 따온 이름이라는데 당시에도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짐작이 간다. 현재의 모습은 정유재란 당시 불탄 것을 인조 때인 1638년 재건하면서 갖췄다.


봄빛이 스며든 광한루

이제 막 봄빛이 스며든 광한루


광한루원 완월정 야경

달맞이를 위해 지어진 수중누각, 완월정.



광한루 앞 연못에는 세 개의 섬이 있다.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곳으로 일컫는 삼신산(三神山)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오작교도 놓였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인들은 절반쯤은 진심으로, 절반쯤은 재미로 돌다리를 들락거린다. 연못 안에는 팔뚝 만한 잉어가 떼를 지어 다닌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인면어(人面漁)가 열 마리쯤 섞여 있다고 알려졌다. 물가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잉어를 쫓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꽤 진지하다.


광한루 앞 연못

연못가에 앉아 인면어(人面漁)를 찾는 아이들



춘향사당은 광한루 뒤편에 자리했다. 꽃다운 열여섯 춘향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입술을 꽉 다물고 치마폭을 앞으로 여민 모습에서 흔들림 없는 신념이 느껴진다. 너른 중앙 마당에는 완월정이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달맞이를 위해 지어진 수중누각답게 밤 풍광이 아름답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이면 춘향제가 성대하게 열리는 무대가 된다.


춘향사당 외관

춘향 사당에 봉안된 춘향 영정

춘향사당


광한루원이 춘향전의 배경이기는 하지만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되짚어보기에는 어쩐지 부족하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을 총 다섯 개 마당으로 생생하게 꾸며 함께 둘러보면 좋다. 만남과 사랑, 고난, 이별 그리고 재회에 이르는 일대기를 조형물로 충실하게 재현했다. 영화 ‘춘향뎐’과 드라마 ‘쾌걸 춘향’의 세트장도 남아 볼거리를 보탠다.


나무벽화 앞 그네타는 춘향이 조형물

관아 감옥에서 재회하는 춘향이와 몽룡이 세트장

춘향테마파크





만복사지에 깃든 그리움의 무게


장차 백 년을 해로하려 했는데 어찌 하룻저녁에 이별이 있을 줄 알았겠소.

임이시여, 당신은 응당 달나라에서 나는 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를 내리는 낭자가 되리니 땅은 어두침침해서 돌아볼 수가 없을 것이오. 하늘은 아득해서 바라보기가 어렵겠소.

나는 집에 들어가도 그저 멍멍히 지내고, 밖에 나가도 아득하여 갈데없는 몸이 되었소.

영혼을 모신 휘장을 대하면 얼굴을 가리어 울게 되고, 좋은 술을 따를 때엔 마음이 더욱 슬퍼지오.

- ‘만복사저포기’ 중에서



남원에는 광한루원 못지않게 애잔한 장소가 또 한 곳 있다. 바로 만복사지(萬福寺址)다. 고려 때 지어져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만복사가 있던 터인데, 지금은 석탑과 석불입상 등 석조유물 몇 개만 절터를 지키고 있다.


만복사진 석인상

만복사진 석인상


만복사의 숨결은 석탑을 해체한 부재에도 담겨 있다

만복사의 숨결은 석탑을 해체한 부재에도 담겨 있다



이곳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속한 다섯 소설 중 하나인 ‘만복사저포기’의 무대다. 만복사에서 쓸쓸하게 지내던 양생이라는 총각이 부처와의 내기에서 이겨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는데, 실은 그 처녀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다는 애틋한 이야기다.

양생도 절도 사라진 너른 터를 걷다 보면 지나온 모든 인연이 살뜰해 괜히 안타까워진다. 다부진 체격의 석인(石人)만이 그리움을 못 이겨 돌이 된 양생처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맞은편에는 석불입상이 아담한 전각 안에 몸을 숨겼다.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투박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뒤로 돌아가면 여래입상이 선으로 새겨져 있어 얼굴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저승과 이승의 사랑 이야기를 쫓다 보면 발길은 매월당(梅月堂)으로 이어진다. 매월당은 남원에서 전통 제다로 고려단차를 만드는 찻집이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양생과 여인이 마지막으로 만난 보련사 터 아래에 자리했다. 바깥세상과 한 발 떨어진 듯 고요한 정취가 일품이다.

이곳에서는 남원 차(茶)의 맥을 잇는 오동섭 장인이 야생 찻잎을 따다 장작불을 떼고 가마솥에 덖어 차를 만든다. 그는 김시습의 차 정신을 흠모해 이곳 보련산 자락에 황토집을 짓고 김시습의 호를 따서 매월당이라 이름 지었다. 김시습은 차를 기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일본에 우리 차 문화를 퍼뜨린 인물로도 알려졌다.


매월당 오동섭 장인

매월당 오동섭 장인


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는 목련꽃

차가 되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는 목련꽃. 목련꽃차는 비염에 좋다고 알려졌다



매월당은 편안하게 들러 귀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 그만이다. 이곳의 자랑인 고려단차와 홍차, 꽃차 등을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기계의 힘을 일절 빌리지 않고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차 맛과 분위기에 빠져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찻집 바로 뒤편에 손님들을 위한 독채도 마련해뒀다. 하루 묵어가며 차담을 나누고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기 좋다.


차주전자에 물을 담고 있다




간절한 마음이 모여드는 천년고찰 실상사


남원에는 간절한 마음을 걸어두기 좋은 절집도 있다. 흥덕왕 때인 828년에 증각대사 홍천이 세운 천년고찰 실상사다. 실상사는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숙종 때 크게 중창했으나, 1883년 화재를 당해 모든 전각이 타 버렸고, 이듬해 보광전을 비롯한 10여 동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실상사 삼층석탑

실상사 보광전과 삼층석탑



실상사는 지리산을 병풍처럼 두른 산내면 들판에 신기루처럼 자리했다. 마을과 이웃하여 들어선 모습이 산속에 웅크리듯 숨어 있는 여느 사찰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해탈교를 건너 돌장승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심에는 단청 없이 맨살을 드러낸 단아한 보광전이 있다. 오래된 나무 기둥마다 강인한 생명력이 고인 듯 느껴진다. 안에 있는 범종은 1664년 제작됐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쇠퇴하고, 일본이 쇠퇴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말이 있어 범종에 일본 열도를 그려놓고 예불할 때마다 그 부분을 두드렸다고 한다.


보광전 범종

보광전 범종의 닳아 없어진 일본 열도

보광전 범종의 닳아 없어진 일본 열도



보광전 오른편에는 철조여래좌상(보물 제41호)을 품은 약사전이 자리했다. 무궁화를 새겨 넣은 꽃살문이 아름답다. 통일신라시대 때 철로 만들었다는 철조여래좌상은 실상사 창건 때부터 지금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간절한 마음을 꺼내놓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철조여래좌상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 철조여래좌상


약사전 꽃살문

약사전 꽃살문



이 외에도 실상사에는 중요한 문화재가 많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해 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 등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이 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피다 보면 천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특히 백장암 삼층석탑은 놓치기 아쉽다. 통일신라 시기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으로 독창적인 예술성과 상상력이 돋보인다. 보살, 선녀, 천왕 등 화려하고 섬세하게 새겨진 인물 장식이 압권이다. 백장암은 실상사의 산중 암자로 실상사에서는 차로 5분쯤 떨어져 있다. 인월면으로 가는 길에 가파른 산길을 따라 1km쯤 올라가면 보인다. 바로 앞까지 차로 갈 수 있어 크게 발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백장암 대웅전과 삼층석탑

백장암 삼층석탑 장식

백장암 삼층석탑. 보살, 선녀, 천왕 등 화려하고 섬세하게 새겨진 인물 장식이 압권이다.



이왕 인월면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황산대첩비와 피바위에도 들러보자. 황산대첩비는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을 기리며 만든 비석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치욕스러운 패전사가 적혀 있는 비석을 무참하게 파괴했다. 지금 서 있는 비석은 1957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일본에 의해 깨진 비석은 오른쪽 파비각(破碑閣)에 보관돼 있다.


황산대첩비지

황산대첩비

1957년 다시 세운 황산대첩비



피바위는 인월면 람천 개울가에 있다. 황산대첩 당시 이성계의 화살을 맞은 왜장의 피가 바위를 붉게 물들였다고 해서 피바위(血巖)로 불린다. 실제로는 바위의 철분 성분이 오랜 시간 물에 닿으면서 산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피바위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건강한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속설도 전한다.


피바위

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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