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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91 호

2018.04.06

그 강물 위의 꽃잎이 세상을 향한 내 사랑인 줄 알거라

그 강물 위의 꽃잎이 세상을 향한 내 사랑인 줄 알거라


전북 임실의 덕치초등학교는 해마다 이맘때면 봄볕 아래 만발한 벚꽃을 교문으로 삼는다. 회문산 아래 화사한 벚꽃을 담장 삼고 있는 이 학교는, 알려져 있다시피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시인 김용택의 모교이자, 그가 36년 동안 재직했던 학교다. 혹시 슬며시 질투가 날지도 모르겠다. 학생으로 6년, 교사로 또 36년. 순한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변의 느리고 더디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시인은 이처럼 화려한 봄 풍경을 모두 마흔두 번이나 보았을 테니 말이다.

시인이 덕치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있었다는 살구나무 한 그루는 생을 다해 베어졌고, 아이들에게 정직과 진실을 가르치던 시인도 이제 늙어 그 학교에서 물러났다. 거의 평생을 다닌 덕치초등학교를 추억하면서 시인이 쓴 산문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 “섬진강에 꽃이 피었고, 강물에 꽃그늘이 드리워지고 꽃잎이 강물에 흩날린다. 사람들아! 그 강물 위의 꽃잎이 세상을 향한 내 사랑인 줄 알거라” 시인이 이 글을 썼을 때도 지금처럼 화사한 봄날의 한복판이었던 모양이다.


섬진강 상류의 고요한 강변에서 중백로가 날아오르고 있다

               섬진강 상류의 고요한 강변에서 중백로가 날아오르고 있다



봄날의 섬진강이라면 아마 다들 첫 봄꽃인 매화와 산수유의 화신(花信)이 당도하는 섬진강 하류의 전남 구례와 광양, 그리고 경남 하동을 떠올리리라. 지류의 물을 받아서 몸집을 불린 섬진강 하류 쪽은 온통 흐드러진 꽃으로 봄 내내 소란스럽다. 봄꽃은 섬진강 하류에서 시작하지만, 매화 꽃잎이 분분히 날려 강물에 떠내려가고 난 뒤에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단연코 섬진강의 상류 쪽에 오래 머문다.

섬진강 상류는 만발한 꽃으로 화려하지도, 몰려든 행락객들로 떠들썩하지도 않다. 봄기운을 빨아들인 강물이 강변의 신록을 따라 그저 고요하게 흐를 뿐이다. 물길은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강변의 작은 마을 사이로 사행한다. 이처럼 평화로운 강변길에서 논둑에 나와 삽을 씻거나 농기구를 정리하면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순한 이들과 나누는 가벼운 목례만으로도 가슴은 따스해진다.


섬진강 상류의 고요한 풍경

                                                                   섬진강 상류의 고요한 풍경



이런 풍경을 찾아 전북 임실의 섬진강변을 따라 가보자.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며 강변의 나무를 베어내고 아스팔트 도로를 놓아버려 영 예전의 맛을 잃어버린 길도 있지만, 강을 거슬러 실타래처럼 갈래갈래 펼쳐진 물길을 되짚으면 아직 포크레인 삽날에 다치지 않은 우리 강의 본래 모습쯤은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섬진강을 이루는 임실의 오수천 방죽길도, 부드러운 천담마을 길도, 옥정호의 호반길도 그런 곳들이다. 목적지가 따로 없으니 바쁠 것도 없다. 섬진강 자락을 따라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봄을 느낄 수 있다. 벚꽃이 절정을 넘기고 나면 섬진강 상류에는 시인이 ‘세상을 향한 내 사랑’이라고 말했던 벚꽃잎들이 섬진강의 맑은 물길을 떠내려갈 것이다.


연두보다 노랑에 가까운 여린 새잎이 꽃보다 화려하다

                                   연두보다 노랑에 가까운 여린 새잎이 꽃보다 화려하다



아 참. 그리고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섬진강 상류에 갔다면 꼭 보고 와야 할 것이 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메 마을의 마을회관 앞 텃밭 곁에 자그마한 비석이 있다. 가난한 강변 마을에서 몸이 부서져라 평생 농사를 지으며 일곱 남매를 길러낸 부모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생애를 기리며 비석은 서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 몇 줄이 이렇다.


“월곡양반·월곡댁 / 손발톱 속에 낀 흙 / 마당에 뿌려져 /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평생 손톱이 다 닳도록 밭을 일구며 일곱 남매를 키워내곤 세상을 뜨고만 어머니 ‘월곡댁’이 그리웠던 막내아들은 ‘월급날이면 술 한 병 사 들고 달려오라’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월급을 쪼개 모아서 비석을 세웠다. 사연에 감동한 석재상이 기꺼이 비석을 만드는 비용의 절반을 댔다. 비석을 짚으며 읽다 보면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다’는 글귀에서 자식의 사무친 그리움이 울컥 느껴진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비석


일면식도 없는 월곡댁에게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의 강’인 섬진강을 본다. ‘좋은 여행’이 어찌 멋진 경치나 맛있는 음식만으로 만들어질까. 섬진강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 거기에 기대 사는 이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에 힘입은 것이리라. 여기다가 순한 여행자들의 발자국이 보태져서 그 아름다움이 더 빛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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