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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95 호

2018.09.05

마음 순해지는 상처의 땅, 철원

마음 순해지는 상처의 땅 철원


견디기 어려웠던 긴 여름의 끝. 마음 순해지는 철원의 세 가지 풍경을 만났다.

                                                                                                    글, 사진 박경일(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1


헥타르(ha)란 단위는 생소하다. 3만5000ha. 이게 대체 얼마만한 넓이인지 짐작되는지. 평으로 환산해보면 단위가 어마어마하다. 자그마치 1억587만5000평, 알기 쉽게 환산해 보자. 일산 신도시의 스물두 배. 수원시 면적의 세 배. 익은 벼들이 넘실거리고 있는 강원 철원평야의 넓이다.

철원평야는 지척의 북한 땅 평강의 화산 분출로 불바다와 함께 끓어 넘친 뜨거운 용암이 이룬 거대한 대지다. 미륵을 자처하던 궁예가 이 들 너머에다 태봉국을 세웠고, ‘대야잔평’과 ‘재송평’이라 불리던 이 들판에서 조선 태종과 세종이 말을 달리며 사냥을 했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폭격으로 산이 다 녹아내릴 정도의 치열한 전투가 지나갔다.

철원평야는 늘 불처럼 뜨거웠던 땅이었다. 한때 펄펄 끓었던 철원의 너른 들을 바라보는 자리가 바로 철원 노동당사 건물 맞은편에 자리잡은 소이산이다.

해발 362m. 인근 금학산이나 명성산에다 대면 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하지만 수평의 평야에 홀로 솟은 소이산 정상에 서면 거대한 철원의 들과 그 너머의 평강고원이 바다처럼, 혹은 거대한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소이산 정상 낙조풍경


소이산에서 느끼게 되는 건 공간과 시간의 막막함이다. 소이산 정상의 경관은 한눈에 담기에 벅찬 ‘공간’이기도 하고 전쟁통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옛 철원 땅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건 신산함과 풍요로움, 긴장과 평화 같은 정반대의 감회다.

늦은 오후 무렵,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소이산 정상의 덱(deck) 위에 텐트를 쳤다. 너른 평원 위로 뜨는 별을 보러 왔다고 했다.

백마고지 쪽으로 해가 넘어가면서 푸른 어둠이 내리자 선명한 별이 떴다. 소이산에서 별은 머리 위로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북쪽 하늘에 정면으로 뜨는 철원평야의 별은 ‘마주 보는’ 것이었다.




#2


차가운 분단의 남과 북을 흘러내리는 강에서 철책을 사이에 두고 고라니와 딱 마주쳤다. 강물을 마시던 고라니가 철책으로 다가와 순한 눈망울로 이쪽을 바라봤다. 손을 내밀면 잡힐 듯한 거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라니는 겁이 많아 자그마한 기척에도 생고무처럼 튀어 달아나지만, 철책 안의 고라니는 태연했다. 남방한계선 철책과 휴전선 철책 사이에 살면서 철책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일까. 물을 마신 고라니가 왕버드나무 숲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 짧은 시간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손대지 않은 순하고 청정한 자연과 차갑고 날카로운 대결의 철조망. 그 정반대 이미지가 결합한 결과는 ‘감동’이었다.


군사분계선 철책 너머의 고라니

용양보 탐방로를 걷는 가족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 마을 초입 도로의 대전차 방호벽에 ‘멸북’ 글자가 아직 선명한 곳. 남북한의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재향군인 100가구의 이주로 재건촌을 건립하면서 조성된 이 마을에는 남방한계선 철책 너머 북녘땅에서 남으로 흐르는 물길 화강(花江)이 있다. 역설의 이름. 차가운 긴장과 경계의 비무장지대(DMZ) 땅을 흘러내리는 강의 이름이 ‘꽃강’이다. 전쟁통에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그 꽃일까. 화강의 물길은 남방한계선의 촘촘한 철책 사이로 흐른다. 과거에는 민간인은 감히 접근조차 못 했던, 그 철책의 코앞까지 ‘DMZ생태평화공원 탐방로’가 놓여 있다. 이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용양보 탐방로’다. 남과 북의 철책 사이에 사는 고라니는 탐방로 주변에 수시로 출몰했다.



#3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 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 전문



노동당사


폐허로 서 있는 철원읍 관전리의 노동당사 건물 앞에는 건물 콘크리트 잔해에다 시를 적어 놓은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철원 출신 시인이 쓴 시가 새겨져 있다. 전쟁의 참상을 상징하고 철원을 대표하기도 하는 아이콘 같은 곳이 바로 노동당사다.

노동당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철원 일대가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철원이 공산 치하에 있던 5년 동안 조선노동당 건물에서는 양민 수탈과 애국 인사의 체포 고문, 학살이 자행됐다. 그 비극의 현장 앞에서 지뢰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을꽃을 노래하고 화약 냄새나는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음을 증언하는 시를 읽는다.


상처의 깊이와 크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일까. 철원을 여행한 이들마다 마음에 새기는 느낌과 깊이는 저마다 다른 듯했다. 오래됐어도 상처는 여전히 뜨겁고 쓰리다. 너무 뜨거워서 델 것 같았던, 그래서 견디기 어려웠던 긴 여름이 이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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