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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2019.3,4vol.500

대한민국의 구석구석 청사초롱이 밝혀드립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청사초롱은 한국관광산업의 현황과 여행정보 및 관광공사, 지자체, 업계등의 소식을 전합니다.
발행호 498 호

2018.12.06

다시 만난 부산

다시 만난 부산


처음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이 즐거웠던, 스무 살의 여행을 다시 떠났다.


글, 사진 박은경




1998년 12월

나의 첫 해운대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곳을 다녔다. 하지만 ‘나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능이 끝나고 성적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마도 기분이 영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때 친구가 뜬금없이 ‘부산이나 갈까?’ 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그래!’ 라고 답했다.

다다음날, 우리는 기차 안에 있었다. 해운대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였다. 몇 시쯤 출발했고 언제 도착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삶은 달걀과 오징어, 과자, 사이다 등을 잔뜩 싣고 좁은 통로를 오가던 ‘카트’에 대한 기억이다. 카트를 밀고 들어오는 승무원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황색 그물망에 담긴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집어 들었을 때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기차역 철로

기차 칸막이 사이로 보이는 역무원의 뒷모습




기차에서 내려 바다로 갔다. ‘바다는 어느 쪽에 있어요?’를 백 번쯤 물어본 것 같다. 그렇게 만난 우리의 첫 해운대는 컸고, 빛나고 있었고, 아름다웠다.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바다를 따라 걸었다. 얼음장같이 시릴 게 빤한 바다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보고, 조개껍데기를 줍는 일 정도였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발바닥에 바닷물이 찰랑이며 와 닿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래 위에 글씨를 쓰고,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바닷물을 맛보고는 ‘생각보다 안 짜다’며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해운대 바다

해변가 모래밭에 글씨를 쓰는 사람


그렇게 첫 여행의 기억은 해운대 바다가 전부였다. 정신없이 놀다가 기차 시간에 쫓겨 흔한 햄버거조차 먹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단순한 하루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해변에 앉아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다시 봐도 좋은 것들


그 후에도 종종 친구와 여행을 갔지만, 부산과는 인연이 없었다.

어느 날 친구와 문자로 대화를 하다가 20년 전 첫 여행이 떠올랐다. 그날이 새삼 그리워졌고, 이번엔 내가 먼저 ‘부산 갈래?’ 하고 말을 꺼냈다. 친구의 대답은 당연히 ‘좋아!’였다.

그렇게 떠난 하룻밤 짜리 여행은 그날처럼 해운대에서 시작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무궁화열차가 아닌 KTX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렸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팔각지붕의 옛 해운대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았다.


해운대 바다를 운행하는 여객선

해운대 바닷가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연인


해운대 바다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컸고, 반짝이고 있었고, 아름다웠다. 해변을 따라 높은 건물이 많이 생겼지만, 바다만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해운대’ 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날의 날씨와 그날의 기분, 모래를 만지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해변에는 그날의 우리처럼 모래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나무 막대기로 서로의 이름을 쓰는 연인들과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우리는 그들 사이로 들어가 잠시 걷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미포철길로 향했다. 동해남부선이 없어지면서 버려진 철길은 산책로가 됐다. 바다를 끼고 선 오롯한 철길이 꽤 운치 있었다.


미포철길을 걸어가는 두사람의 뒷모습

미포철길 옆 집앞 전경


자갈밭과 선로를 번갈아 가며 15분쯤 걸었더니 커브길 너머 터널이 하나 보였다. ‘달맞이재’ 라고 적혀 있었다. 25m의 짧은 터널이었지만 세월의 흔적은 가볍지 않았다. 터널 너머로 공사가림막이 눈에 들어왔고,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기찻길에서 나와 옛 해운대역을 찾았다. 색 바랜 팔각지붕이 반가웠다. 20년 전 그렇게 커 보이던 역사 입구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역 뒤편으로 돌아가 철길을 가로질러 주택가로 들어섰다. 최근 ‘해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골목이었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앙증맞고 깔끔한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식당이거나 카페였다. 몇몇 집은 줄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서울만큼 소란하지는 않았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가 과자점에서 파운드 케이크를 사 들고 길 건너 카페로 향했다.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밀린 얘기를 했다.


옛 해운대역 전경

해리단길 카페 안 모습

해리단길 카페 밖 모습

커피 한 잔

옛 해운대역과 해리단길



우리의 익숙한 초행길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꼭 가봐야지 마음먹었던 곳이 있었다. ‘기장’이었다. 우연히 기장에 문을 연 리조트 기사를 보고 쭉 궁금한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친구가 먼저 얘길 꺼냈다.

“기장에 아난티 코브라는 리조트가 있는데 거기 서점이 그렇게 멋지데. 커피도 맛있고!”

이튿날, 우리는 해운대에서 차를 빌려 기장으로 향했다. 조금 더디더라도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청사포와 송정에도 가보기로 했다.

청사포는 달맞이길과 송정해수욕장 중간에 숨겨진 아담한 포구였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길게 뻗은 방파제 끝에 나란히 마주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다릿돌전망대도 눈에 들어왔다. 해수면에서 20m쯤 떨어져 있다는데 반달 모양의 투명바닥 때문인지 더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송정해수욕장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파도는 해변을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추위를 잊고 바다로 뛰어드는 서퍼들이 꽤나 많아서 놀라웠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시시각각 변하는 부산 바다의 표정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법. 전망대에 오르거나, 서핑에 나서거나.




아난티 코브에는 11시쯤 도착했다. 해안을 끼고 들어선 말끔한 건물에서 이국적인 향이 풍겨왔다. 주차를 하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입구에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 라는 생소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서점은 ‘영원한 여행’ 이라는 이름처럼 평범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며 신간을 추려둔 코너도, 도서검색대도 없었다. 대신 영국의 작은 서점 출판물, 책을 위한 책, 책 표지가 분홍빛인 책 등으로 분류돼 있었다. 판매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독서 공간도 넉넉했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세계와는 동떨어진 듯 평온한 표정으로 각자의 책을 들춰보고 있었다. 마치 바깥과 서점을 구분하는 두꺼운 막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충동구매를 억누르는 데 온 기운을 쏟아야만 했다. 결국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씩을 골라 서점을 빠져나왔다. 다음번에는 온종일 머물며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리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아난티 타운 외관 전경

아난티 코브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아난티 타운.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아난티 타운 내 서점, 이터널 저니 내부


이터널 저니 내부2

아난티 타운 내 서점, 이터널 저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잠시 머물렀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깜짝 놀랐다. 서점 앞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에 잠시 들렀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1938년 문을 연 카페로 세계 유일의 분점이 이곳 아난티 코브에 있었다. 친구가 찾아본 바로는 로마 현지에서 장작불로 로스팅한 원두를 항공으로 가져온다고 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풍경이 좋아서인지, 원두가 특별해서인지, 커피향이 유난히 그윽했다.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 테라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한 잔




우리들만의 여행


아난티 코브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고, 30분 남짓 달려 ‘아홉산숲’에 도착했다. 남평 문씨 집안에서 9대에 걸쳐 무려 400년 동안 관리해온 숲이었다.

우리가 아홉산숲을 찾은 건 오로지 호기심 때문이었다. 담양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는 대나무 숲을 확인하고 싶었다.

금강소나무 군락을 지나 첫 번째 대숲에 도착했다. 두꺼운 대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누워 온몸으로 숲을 즐겼다. 듬성듬성 햇살이 아른거렸고, 흔들리는 댓잎이 빗소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대나무 숲을 걸어가는 두 사람

빽빽한 대나무 숲


우리는 여기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마저 둘러보기로 했다. 별 기대는 없었다. 편백이 있는 오솔길을 지나고, 두 번째 대나무 숲에 들어섰다. ‘와’ 하고 입이 벌어졌다. 첫 번째 대숲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빛이 채 스미지 못한 어스름한 숲속엔 신비감이 가득했다. 호랑이가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몽환적인 기분에 휩싸여 적막한 숲길을 꽤 오랫동안 걸었다. 거의 아무 생각이 없어져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었을 때 즈음, 친구는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들어봐. 숲이랑 잘 어울려!’ 노래가 흘러나왔고, 곡을 세 번쯤 반복해서 듣고 난 뒤 숲을 나왔다.


대나무 숲에서 사진을 찍는 한 사람


두 시간 넘게 산에 있었더니 몸에서 살짝 한기가 느껴졌다. 마침 기차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어 숲 근처 한옥 카페에 들렀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정원이 예뻤다. 따끈한 차 한 모금에 몸도 마음도 녹아내렸다.

돌아가는 길, 머릿속을 맴돌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숲에서 나눠 듣던 노래였다. ‘우리 부산에 또 오자. 숲에도 다시 오고!’ 친구가 말했다. 함께 기억하고 싶은 조각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한옥 카페 외관 전경

한옥 카페 내부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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