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라면 믿고 본다
뮤지컬 흥행의 보증수표 장유정
글 사진 우현석(서울경제신문 객원기자, 여행칼럼니스트)
“영화는 일단 재미있고 봐야 한다.”
할리우드의 액션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던 버트 레이놀즈의 지론이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형사역을 도맡았던 그는 극예술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꿰뚫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예술영화입네” 하고 폼을 잡아봤자, 재미가 없으면 돌아오는 것은 관객들의 외면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영화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어지는 틀이 파괴된 지 오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가 초장부터 얼마나 관객들의 얼을 빼놓는지를… 아니면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보여주는 초반의 전투신과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에 정신을 빼앗겼던 경험을… 그 같은 트렌드가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우선은 관객들의 정신을 빼놓고 시작해야 흥행의 ‘흥’자라도 영화평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그의 영화 ‘괴물’과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줬던 화끈한 도입부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요즘 영화는 그렇게 처음부터 화끈하고, 관객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공연 예술에서는 그 같은 흡인력이 구현되지 못했다.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과 영화제작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음향효과, 디지털기술, 그래픽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그 같은 시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2006년, 이 같은 고정관념이 무너져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외국의 라이선스 작품이 아닌 초라한 창작뮤지컬 무대 위에서였다. 뮤지컬의 제목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잊혀질만 하면 한 번씩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전통의 명문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이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물량을 투입하고, 유명 배우들을 앞세운 대작들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창작극답게 우리의 정서가 녹아든 작품은 외국 작품처럼 뜬금없지도 않았고, 구성이 탄탄한데다, 음악은 경쾌했고, 전개도 빨랐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 했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적수공권으로 밀어붙인 연출가 장유정의 재능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돋보이는 것은 흥행을 위해 관객에 영합하지 않는 고집과 작품성이었다.
장유정은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가볍지 않은 주제를 고집했고, 끝내 그것으로 승부를 보았다. 장유정의 작품에서는 ‘연우무대’에서 연출을 맡았던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교수의 DNA가 흐르는 듯도 했다. 그 위에 극적(劇的) 우성(優性)인자는 뮤지컬의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래서 기자는 연출자 장·유·정의 이름에 주목했고, 이후 그가 만든 작품은 ‘그날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여러 차례씩 되풀이해서 봤다.
기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신예였던 연출가 장유정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통해서 기자에게 뮤지컬이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훈계를 하듯 다가왔고, 그 같은 훈계는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를 통해서도 예외 없이 이어졌다. 이후 그의 작품은 중국 등에 판권을 팔아 현지에서 절찬리에 공연되는 등 한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뮤지컬 흥행의 보증수표로 통하는 연출가 장유정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 지금까지 습작을 포함해서 무대에 올린 뮤지컬이 전부 몇 편이나 되나요.
- “뮤지컬만 따지면 일곱 편입니다. 2002년 무대에 올린 ‘송산야화’가 데뷔작이에요. 이 작품을 각색해서 만든 게 ‘키스미 타이거’이고요. 내용은 삼국유사에 김현이라는 사람이 호랑이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호 처녀를 만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을 모티브 삼아 만든 멜로 드라마였습니다.”
- 장유정은 이 작품으로 서서히 뮤지컬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척박했던 창작극 시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 송산야화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 “송산야화에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원형이 있기는 한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송산야화로 공연을 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있어서 접촉은 해봤는데 옛날 방식으로 가는 게 나은지, 손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손을 본 게 ‘키스미 타이거’인데 아직 판단이 안섭니다.”
- 하지만 기자에게 그의 진가를 확인해 준 작품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천주교재단이 운영하는 무료병원에서 골칫덩어리 남자 환자가 사라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당시 뮤지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미스터리물로 시작했다. 극은 시종일관 노망 난 할머니의 격한 댄스와 행려병자, 댄서 출신 여성의 격정적인 대사, 그들을 한데 엮는 페이소스와 간단한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극이 끝날 때까지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 그래도 유명세를 얻은 건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 였지요.
- “네. ‘오! 당신’은 2003년 겨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공연했던 ‘드레싱 해드릴까요?’를 수정, 보완한 작품인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겁니다. ‘김종욱 찾기’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 재학 중에 만든 작품인데, 2004년 슬로바키아 블라티슬라바에서 열린 국제학생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다녀온 후 예술의 전당 공연 때 CJ에서 상품성이 있다고 보고 공연권을 사갔습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뭔가요.
- “잔인한 질문이에요. 모든 작품이 다 애착이 갑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게 없는 것처럼, 자식에게 애착 가듯 합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관객의 작품이 되긴 하지요. 한 때는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민망했는데 관객들과 함께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이제는 당당히 ‘어떤 점이 좋고, 나쁘다’라고 자연스레 말할 수 있어요. 소설도 그렇다는데, 하물며 피드백이 뚜렷한 공연은 말할 것도 없지요.”
- 장 감독은 직접 쓴 각본으로 연출까지 합니다. 좋은 점은 무엇이고,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 “저는 연출을 먼저 시작하고 작품은 나중에 썼어요. 연출을 하면서 테크닉을 배운 게 도움이 됐습니다. 내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두 가지가 공존하다 보니 오래 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에 치이고, 고독에 치여서 힘들었을 겁니다.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두 개 다 하는 게 좋습니다.”
- 한 때 장유정은 기자와 미스코리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가 나를 상대로 기자들의 속성과 심리 등에 대해 취재를 하던 생각이 났다.
- 준비하던 대본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 “요즘 언론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그 작품 때문에 언론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다 쓰긴 했는데 아직 발표할 수준이 아닙니다. 임자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80년대 당시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데 정치적 이야기처럼 비쳐서 들고만 있어요. 요즘 세태가 무엇이든 규정짓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하죠. 그렇게 규정되고 해석되는 순간 작품이 새롭게 해석돼서 깜짝 놀라곤 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무대에 올려 볼 생각입니다.”
- 장유정은 작품 집필을 시작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듯했다. ‘김종욱 찾기’를 쓰기 위해 인도를 다녀왔고, ‘형제는 용감했다’에서는 시댁인 안동 사람들의 정서를 읽어 작품 위에 그대로 찍어냈다. 신문기자와 미스코리아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 언론대학원까지 다닌다는 그에게 요즘 신문은 어떻게 비치는 지 궁금했다.
- 언론대학원에 다녀보니 신문이 달리 보입니까.
- “신문 기사는 비슷하지만 편집은 제각각인 것 같아요. 편집 방향에 따라 논조가 달라지더군요. 신문 논조에 따라 중요한 사건을 지우기 위해서 작은 사건이 키워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기사의 전체 흐름을 읽고 신문편집의 방향이 바뀌는 것도 경험했어요. ‘김종욱 찾기’를 무대에 올린 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는데 제목이 ‘내 첫사랑은 김종욱’이라고 나왔더라고요. 그 기사가 가장 많이 본 기사였어요. 나를 인터뷰한 기자에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했더니 “편집자가 제목을 그렇게 달았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팩트는 아니지만 정황은 맞았던 것 같아요. 이름은 결국 상징체계니까.
- 내 아이가 여섯 살인데 자기 성이 이씨라서 그런지 저를 ‘이유정’이라고 부르고 싶어 해요. ‘언어가 규정하는 게 되게 재미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요. 세상은 눈을 뜨면 볼 거리고, 배울 거리에요. 예전에는 이런 버거운 상황이 괴로웠고, 집중도도 떨어지고 해서 많이 울었어요. 요즘은 안 써지면 울지 않고, 무조건 나가서 인풋(In-Put)을 해요. 집착하고 있으면 어디서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니까요. 언론대학원을 간 것도 그 때문이고...”
-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그는 이미 대학 재학 중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에 다녀왔고, ‘김종욱 찾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인도로 향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는 그런 열정과 집착의 산물인 것 같았다.
- 7년 전에는 제작자들이 장 감독의 작품이 뮤지컬 소재로는 무겁기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까.
- “요즘은 제가 작품을 많이 안 하고 거절을 많이 해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때는 한 달에 제의를 열두 번 받은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대본을 쓰는데 1년쯤 걸리는데다, 초연은 완성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3년은 지나야 작품이 안정기를 맞는다고 치면 4년은 금방 흘러가 버리는 셈이지요. 요즘은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 열 개 중 일곱 개가 망한다는데 나는 한 개 제대로 해서 잘 되는 게 좋아요.
- 첫 시작이 틀어져 있는데 교정한다고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거든요. 내가 다루는 주제나 소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신빙성이나 디테일이 살아나니까요. 신빙성이 생기기까지는 시간도 걸리고요. 그래서 제작자들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 ‘금발이 너무해’는 상업적 성격이 강한 대형작품으로 분류될 만한데 그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 “늘 대본을 직접 써서 하다가, 외국 대본으로 만든 작품이었어요. ‘금발이 너무해’를 미국에서 볼 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테크니컬 공부를 많이 하게 됐고요. 그다음 작품이 김광석을 이야기 한 ‘그날들’이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전까지 소극장 작품을 많이 했기 때문에 메인 플롯을 살리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었어요. 대본도 중요하지만 연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죠. 그 작품을 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전까지는 할리우드 영화를 안 봤는데 그 이후로 보게 됐어요.”
-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취재를 얼마나 합니까.
- “취재와 창의력의 비율은 5:5 정도예요. 이를테면 증권가에 있는 사람을 캐릭터로 만들려고 증권맨들을 만나 본 적이 있어요. 인터넷검색을 하고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증권시장이 1600년대 네덜란드에서 튤립거래 때문에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선 아는 사람에게 쉬운 걸 물어보고, 그다음에는 펀드매니저, 회계사, 보험회사 직원, 증권사 자산관리 매니저 등 7명을 만났어요. 경제 관련 서적 7권을 읽었고요. 그런데 그 단계에서 중단해 버렸어요. 또 경호원에 관한 작품을 써 볼까 하고 청와대 직원을 포함해 경호업무를 하는 분들을 만나 취재한 적도 있어요. 일곱 번째 만났던 사람이 저보고 “혹시 간첩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때 처음 알게 됐죠. 경호원들이 검정 양복을 입는 이유는 밝은 옷을 입으면 권총이 비치기 때문이고, 경호원들이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하고 신변정리를 잘하는 이유는 오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걸요. 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상황을 유추하면서 작품의 신빙성을 높여요. 그런 자료가 준비되면 대본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남에게 의뢰받은 작품은 하기 싫은 거예요. 제가 작품을 많이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뮤지컬은 10년을 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는데 어떻게 대충 만들 수 있겠어요. 저는 남의 돈을 가지고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목숨을 걸고 집요하게 파고들어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판인데…”
- 장감독은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을 어떻게 봅니까?
-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건 좋은 거지요. 창작이 안 나와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시도나 준비는 많아요. 대형 창작극이 없을 뿐이지요. 뮤지컬 시장이 3,000억원이 됐고. ‘겨울왕국’ 같은 뮤지컬 만화영화가 1,000만 명을 넘었어요. 그것은 ‘겨울왕국’이 잘 만든 뮤지컬이기 때문이에요. 누가 감히 ‘레미제라블’이 400만을 넘길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시장이 갑자기 죽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다만 어떤 방향이 순방향인지 고민은 해봐야겠지요. 몇 명의 배우에 의해서 시장이 움직이는 상황은 그 몇 명도 좋아하지 않을거에요. 결국 작품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될 거에요. 모두가 목숨 걸고 해야 르네상스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동시에 두 작품을 하지 않아요.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지요. 저는 우리나라 뮤지컬 무대에 조승우라는 배우가 있는 걸 감사히 생각해요. 워낙 성실한 배우에요. 그 사람이 맡는 배역은 쉬운 역할이 하나도 없어요. 헤드윅, 지킬하이드 같은 작품에 계속 도전했다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저는 ‘맨오브라만차’를 보면서 이 작품은 고전이라 재미로 보는 작품이 아닌데 결국 재미있어서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승우가 그걸 깨닫게 해줬어요. 저는 언젠가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으니까요. 기회가 온다면 꼭 하고 싶어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망하면 한국에서는 다시는 기회가 안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극영화를 한 번 더 하고 경험을 쌓고 난 후에 하고 싶어요.”
- 자주는 아니지만 이미 몇 차례 만나 뮤지컬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신 적이 있는 기자와 취재원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건너뛰면서 세 시간 가까이 질문과 대답을 엮어 갔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취재원인 그가 기자에게 질문하면서, 수첩에 받아 적고 있었다. ‘이 친구 정말 못 말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인터뷰가 이어지면 내가 손해를 볼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그만 사진을 찍으러 나가자”는 말로 자리를 파했다.
<김종욱 찾기>
장유정의 티켓파워
소극장 작품 위주인 장유정의 작품들을 대극장 작품인 ‘맘마미아’나 ‘오페라의 유령’과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일단 공연장 객석 수가 다르고 애초 제작 콘셉트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사들이 장유정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그가 한 번 무대에 올린 작품은 완성도가 높고, 수명이 길어 수지 타산을 맞추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종욱 찾기’는 8년간 오픈런(Open Run : 끊지 않고 계속해서 공연함)으로 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기록은 진행 중인데 아직도 한 번 공연에 350명 정도의 관객이 들고 있다. ‘김종욱 찾기’는 초연 후 5년 만에 매출 100억 원 달성이라는 소극장 창작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김종욱 찾기’가 ‘지하철 1호선’이 14년간 동원한 65만 명이라는 기록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중국에 라이선스 판매가 성사돼 160회의 공연이 진행됐으며, 중국 내 오픈런도 계획 중이다.
<형제는 용감했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2008년 3월 대학로 자유극장(구 PMC 자유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후 작년 9월까지 총 522회 공연에 관객 22만2,860명을 동원했다.
연우무대를 통해 무대에 올린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6년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후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006년에는 특히 ‘김종욱 찾기’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장유정의 작품 두 편이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