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5
청사초롱 독자가 뽑은 2015 여행 버킷리스트, 흑산도
청사초롱 독자가 뽑은
2015 여행 버킷리스트, 흑산도
청사초롱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2015년 버킷리스트 여행지 ‘섬’. 그 두 번째 주인공은 한반도 서남단의 깊고 검은 섬, 흑산도입니다.
흑산도는 멀다. 전남 목포에서도 93㎞, 쾌속선으로 2시간이 걸린다. 멀리서 보면 산과 바다가 검어 보인다고 흑산도라 이름 붙었다. 근처에는 영산도 대둔도 다물도 장도 같은 섬들이 빙 둘러싸고 있고, 더 멀리로는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만재도 홍도 가거도 등의 섬들이 모여 흑산면을 이룬다.
흑산도는 섬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길이 8㎞, 폭 4㎞, 면적 19.7㎢(약 593만 평)의 섬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경치를 선사한다. 특히 동해·서해·남해의 매력을 두루 품은, 장쾌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에 수시로 발길을 멈추다 보면 어느새 해가 서쪽 자락으로 기운다.
해안도로 따라 흑산도 일주
흑산도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둘러보는 게 좋다. 도는 방향은 상관없다. 어느 쪽을 택하든 길은 처음부터 오르막이고, 풍경에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왕이면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예리항(흑산도항)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일주할 것을 추천한다. 일몰 시각에 맞춰 상라산 전망대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상라산은 흑산도 북쪽에 있는 해발 230m의 야트막한 산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흑산도 최고 비경으로 꼽는다.
또 도보나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는 경우에도 시계방향이 낫다. 같은 오르막이라도 반시계방향 쪽이 훨씬 더 힘든 구간이라 초반부터 진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리마을 입구 언덕에서 보이는 칠형제바위>
시계방향으로 첫발을 내딛고 고개를 두어 번 넘으면 먼저 청촌마을이 나타난다. ‘청촌’은 마을 주변에 산림이 울창하고 사철 푸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멸치잡이가 생업인데 요새는 젊은 사람이 없어 육지의 직업소개소에서 사람을 구해 어장에 나간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볼거리는 구문여 바위. 바위섬 한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파도가 칠 때 구멍 사이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청촌리를 뒤로 하고 다시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서면 이번엔 천촌리다. 이곳은 면암 최익현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비석과 그가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며 바위에 새긴 ‘기봉강산 홍무일월(基封江山 洪武日月)’ 글자가 남아 길손을 반긴다.
<천촌리에 남아있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흔적>
최익현 유배지를 벗어나 1㎞쯤 가면 샛개해수욕장이 아늑하게 숨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꽤 길고 높은 고갯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가파른 고갯마루를 지나 내려가는 길에 사리마을이 있다. ‘모래미’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손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를 펴낸 곳으로 의미가 깊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연해의 어류를 연구 기록한 일종의 어류 백과사전이다. 손암은 흑산도 주민의 도움을 받아 이를 완성했다.
<샛개해수욕장>
이와 함께 정약전은 사촌서당(복성재)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후학양성에도 힘썼다. 서당은 현재 마을 뒤쪽 언덕 위에 복원됐다. 그 아래에는 작은 천주교 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가 있는데 겉모습이 운치 있다.
사리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심리마을이다. 고갯길은 짧아도 구불구불 가파르게 이어져 꽤 험하다. 그 때문인지 이름도 한다령(한이 많은 고개)이다.
한다령에는 일주도로 개통을 기념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 한쪽에 준공기념비와 함께 날개 달린 천사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흑산도가 속한 신안군의 이미지(천사의 섬)를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심리마을(지프미마을)은 흑산도 서쪽 해안에서 가장 깊숙한 만에 자리했다.
<한다령고개 천사 조형물>
마을을 뒤로하고 일주도로를 따라 계속 움직이면 흑산도의 명물 하늘도로와 닿는다. 해안 절벽을 따라 교각 없이 다리를 길게 연결한 이 길은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과 바다와 이어지는 듯한 아찔함을 주는 하늘도로>
하늘도로를 지나면 지도바위가 있는 비리마을과 천마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마리마을이 차례로 나오고, 이어 상라산 전망대에 이르는 긴 오르막이 펼쳐진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만나고 전망대에 서면 탁 트인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굽이굽이 고갯길이 발아래 펼쳐지고 그 앞쪽으로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열두 구비를 그리며 산에서 내려가면 무심사지 삼층석탑과 석등을 지나 아담한 배낭기미 해수욕장에 닿는다. 곧이어 등장하는 진리당(진리 처녀당)은 흑산면 22개 성황당의 본당이다. 근처에 영혼을 부른다는 300년 된 초령목이 있었으나 지금은 고사하고 어린나무들만 남아 숲을 이룬다. 최근에는 진리당과 이 숲을 묶어 ‘신들의 정원’이 조성됐다.
<진리당(신들의 정원)>
흑산성당도 놓치면 아쉽다. 섬의 민속자료와 함께 천주교의 전파 과정을 가늠할 수 있는 박물관도 갖췄다. 성당 입구에 줄지어 선 조각상과 성모상이 멋스럽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나면 다시 예리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진리 지석묘군에 들러도 좋다. 지금까지 흑산도에서 확인된 유일한 지석묘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4호로 지정됐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이기도 하다.
톡 쏘는 홍어 한 점에 탁주 한잔
흑산도까지 와서 홍어 한 점 먹지 못하면 서운하다. 흔히 홍어는 삭혀서만 먹는 것으로 아는데 흑산도에서는 삭히지 않은 신선한 홍어를 많이 먹는다. 지금이야 목포까지 2시간이면 닿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흑산도 인근에서 잡은 홍어는 목포에 모여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목포에서 팔다 남은 홍어는 영산강 하구 영산포로 향했다. 흑산도에서 싱싱한 홍어를, 목포에서는 중간 정도 삭힌 홍어를, 영산포에서는 푹 삭힌 홍어를 주로 먹게 된 이유다.
그래도 홍어의 매력은 ‘톡’ 쏘는 향과 맛에 있다. 여기엔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식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푹 삭힌 홍어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다. 홍어 특유의 향은 요소 덕분이다. 동물은 노폐물, 즉 요소를 오줌으로 방출하는데 홍어는 이를 피부로 보낸다. 피부로 간 요소는 암모니아 발효를 하고 이는 잡균을 죽인다. 먼바다에서 뭍으로 이동하는 동안 홍어는 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잡균이 없어 먹어도 해가 없었다.
<묵은지와 홍어, 그리고 전복이 더해진 홍어삼합에 사리마을 막걸리를 더했다>
홍어에게 11월과 12월은 짝짓기 시즌이다. 수정된 알은 석 달 후 새끼 홍어가 된다. 첫해 몸통 12~16cm 정도까지 자란 홍어는 2~3년 후 20~40cm까지 큰다. 그리고 5~6년이 지나면 1.5m가 넘는 성어가 된다. 이렇게 잘 자란 홍어를 ‘1번치’라고 부른다.
암놈은 암치, 수놈은 수치라고 한다. 둘의 차이는 꼬리 양옆에 달린 거시기. 암놈이 맛도 좋고 값도 비싸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것만 잘라내면 암치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일꾼들이 소주 안주로 잘라가도 못 본 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홍어 잡는 건주낙을 손질 중인 어부>
<흑산도에서 경매되는 홍어에는 바코드가 붙어있다. 홍어의 정보와 함께 언제 어디서 누가 잡았는지 알 수 있다>
결국 홍어의 최고봉은 ‘암치 1번’이다. 8.25kg 이상 나가는 홍어 암놈을 뜻한다. 이는 최상품이자 흑산도 홍어 시세의 기준이 된다. 비쌀 때는 한 마리에 100만 원 가까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다음은 암치 2번, 7.25kg 이상 나가는 홍어 암놈이 대접을 받는다. 1kg 정도 차이가 날 뿐인데 가격은 10만 원까지 벌어진다. 어민들은 8kg 이상 되는 홍어가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흑산도에서 경매되는 모든 홍어에는 바코드가 따라간다. 바코드를 찍으면 누가 잡았는지 알 수 있다. 명절과 한겨울에 가장 비싸다.
<홍탁이라고 이름 붙을 정도로 홍어는 탁주와 잘 어울린다>
홍어는 톡 쏘는 코부터 오독오독 씹어 먹는 날개, 그리고 보통 살코기라 부르는 몸통까지 버릴 것이 없다. 애주가들에게 유명한 홍어애는 보리싹과 된장을 풀어 끓여 먹을 뿐 아니라 싱싱하면 기름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제철은 겨울에서 이름 봄까지. 그중에서도 열흘쯤 지나 물이 적당히 빠진 홍어가 가장 차지고 맛있다. 여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흑산도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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