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30
가을 초입, 속 깊은 바다를 만나다-부산 몰운대길
그해 푸르렀던 여름을 뒤로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적당한 햇볕이 내리쬐는 해안을 걸었다. 갯벌 생태탐방로를 지나 고운 모래사장을 스쳐 솔향 가득한 섬을 자박자박 걸었던 길, 부산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글 박산하(여행작가) 사진 박산하, 박은경
부산 몰운대길 | 4㎞, 약 1시간 30분 소요
모든 구간은 도보로 이동하는 시간을 안내한다
노을정 휴게소에서 시작하는 몰운대길은 꿈의 낙조 분수대로 바로 갈 수 있고, 다대포해수욕장에 데크로 만들어진 생태길을 걸으며 갯벌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다대포 해변공원 내엔 해솔길이 만들어져 있어 바다 냄새와 솔향을 맡으며 걷기 좋다. 몰운대 입구부터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산길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자. 문화재와 등대, 절벽 아래 한가로운 작은 해변 등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바다가 펼쳐진 다대포
여름이 빠져나간 해수욕장은 갑자기 쓸쓸해진다. 부산 바닷가는 더욱 그렇다. 여름 한껏 들떠 있던 그곳은 찬바람이 스며들면 금세 고요해진다. 방학이 끝날 무렵의 다대포해수욕장도 모처럼 여유가 들어찼다. 가족이 찾기 좋은 바다로 1km에 이르는 넉넉한 백사장과 21.6도의 평균 수온으로 따뜻하다. 낙동강에서 실려 온 고운 모래사장과 완만한 경사, 얕은 수심 등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해수욕장으로 손꼽힌다. 올해 4월에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 구간인 다대선(신평~다대포해수욕장)이 개통되면서 찾기에 더욱 편리해졌다.
솔향 그윽한 다대포해수욕장
다대포는 조선시대 다대포진(多大浦鎭)이 있던 곳으로 왜구를 막기 위한 중요한 국방의 요충지였다. 근처에 있는 아미산에는 당시 봉화를 올렸던 봉수대가 남아 있다. 다대포 옆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잘 보이지 않은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예부터 경치가 좋은 곳을 일컫는 부산의 대표적인 경승지(景勝地)다. 또한 중요한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백악기 시대의 하부다대포층(역암), 제4기 단구퇴적층, 퇴적동시성암맥 등을 볼 수 있다. 몰운대 입구에선 지질과 관련된 해설을 안내받을 수 있다.
걷기 여행은 다대포에서 몰운대에 이르는 약 4km의 구간이다. 다대포 바닷가는 갯벌과 모래사장이 공존해 더욱 특별하다. 갯벌에선 다양한 조개와 고둥 등이 자란다. 백합, 피조개, 바지락, 가리비, 굴, 맛조개, 비단고둥, 큰뱀고둥 등 많은 생물체가 풍성한 생태계를 이룬다. 갯벌 아래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손톱만 한 게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엽낭게와 풀게, 달랑게 등이다. 먹이가 풍부한 갯벌이기에 괭이갈매기와 쇠백로, 왜가리 등도 날아다닌다.
다대포해수욕장의 바다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데크로
동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붉은빛이 고운 해당화가 띄엄띄엄 자란다. 바닷가 모래땅에 잘 자라는 보랏빛의 순비기나무와 분홍빛 갯메꽃, 자주색에서 담백색으로 변하는 갈대꽃도 만날 수 있다.
데크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엔 다대포 해변공원에 닿는다. 키 작은 소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어 선선한 그늘과 바람을 전해준다. 공원처럼 꾸며진 해솔길은 산책 코스로도 좋다.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토사가 쌓여 생긴 곳으로 작은 물줄기 사이, 아기자기한 다리도 만들어져 있다. 공원 중간에는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문’이 세워져 있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다대포를 살려낸 것.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공원이다.
섬인 듯 섬 아닌 몰운대를 걷다
다대포 해변공원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몰운대를 걷는 길. 몰운대는 16세기까지 몰운도라고 부르는 섬이었지만 낙동강 퇴적물이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었다. 남쪽 끝은 해식애와 해식동이 발달해 있고, 육지는 모래 해안이 발달해 해수욕장이 되었다.
조개구이와 칼국수 식당 등이 줄지어 있는 먹거리 골목을 지나면 몰운대 입구에 닿는다. 입구부터 시멘트로 정비된 길이 이어지는데 꽤 가파르다. 10분쯤 걸었을까, 쭉쭉 뻗은 소나무가 빽빽하고 자잘한 돌과 흙길이 이어진다. 이제야 자연 속에 온전히 들어선 것 같다. 보랏빛 맥문동과 푸릇한 고사리가 반긴다.
몰운대의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숲길을 걷다 다대포 객사를 발견한다.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보관하고 고을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망배를 드리던 곳이다.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보통 객사는 정당과 좌우에 별도의 건물인 익실을 두는데 다대포 객사는 정당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벽이 없고 아담하다.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1825년(순조 25)에 중수했고, 다대1동에 있었던 것을 1970년 현재의 자리에 원형 그대로 이전·복원했다. 어떤 이유로 여기에 다시 세워졌는지 그 이유가 아리송하지만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 건축물이기에 주민들도 귀하게 여긴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몰운대 객사
객사를 나와 남쪽으로 걸으면 정운공순의비가 나온다. 1592년 일본 군함 500척과 싸워 승리를 거둔 부산포해전에 녹도만호 정운 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우부장으로 출전해 장렬하게 싸우다 순절했다. 그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1798년(정조 22)에 8대손 장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이라 접근할 수 없다.
키 큰 소나무가 울창해 싱그럽다
이번엔 동쪽의 전망대로 방향을 튼다. 그동안 온전히 숲길을 걸었다면,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등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이란 것이 살며시 느껴진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 만난 작은 해변은 마치 나만을 위한 비밀의 공간 같다. 그리고 작은 섬과 검은 등대가 바다 위에 떠 있다.
다시 북쪽으로 걸으면 화손대(花孫臺)가 나온다. 키 작고 단단한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야 하는데 겨울엔 빨간 꽃들로 더욱 촘촘하고도 아름다우리라. 다시 입구로 향하는 길, 작은 연못 하나를 발견한다. 작은 돌들을 괴어서 만든 연못으로 몰운대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을 위해 받아 놓은 빗물터다.
몰운대길을 걷다 만난 비밀스러운 해변
몰운대 입구에서 나오자 들어설 땐 잠잠했던 다대포해수욕장의 ‘꿈의 낙조 분수대’에서 시원스레 물이 뿜어져 나온다. 분수는 원형지름 60m, 최대 물 높이 55m, 둘레 108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진 바닥분수는 다대포의 명물로 자리한다. 특히 어두워지면 1160개의 조명 장치가 분수를 화려하게 물들인다. 낙조와 야경이 아름다운 다대포에 어둠이 깔리길 기다리며 걸음을 잠시 멈춘다.
꿈의 낙조 분수
부산 몰운대길 가는 길
열차
KTX 서울역~부산역 하루 51번 운행(약2시간 40분 소요)
ITX-새마을 서울역~부산역 하루 7번 운행(약 4시간 50분 소요)
무궁화호 서울역~부산역 하루 13번 운행(약 5시간 30분 소요) / 모두 토요일 기준
※부산지하철 1호선 부산역에서 탑승, 다대포해수욕장역 하차
버스
서울고속버스터미널~부산서부버스터미널 하루 6회 운행(약 4시간 3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부산서부버스터미널 하루 12회 운행(약 4시간 30분 소요)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338번 버스 승차, 다대포해수욕장 정류장 하차(약 1시간 소요)
※ ‘걷기여행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매달 선정하는 걷기 좋은 길 10선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소개합니다.
걷기여행길 10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종합안내포털(www.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